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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호의 과학 에세이]저 푸르스름한 변덕쟁이는 소원을 들어줄까?

입력 | 2018-02-06 03:00:00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김재호 과학평론가

1946년 ‘스카이&텔레스코프’라는 잡지에 블루문이 소개됐다. 그 당시 농부들은 동지에서 다음 동지까지 1년 동안 일어난 일식과 월식 등 기상 변동을 기록했다. 원래 한 계절(분기)에 세 번 보름달이 뜬다. 그런데 특정한 계절에 네 번 보름달이 떴고, 세 번째 보름달을 블루문이라고 불렀다. 왜냐하면 다른 보름달은 각각 계절의 변화에 따른 이름이 있지만 그 세 번째 보름달만 이름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를 잘못 해석해 한 달에 보름달이 2회 나타날 때 두 번째 뜨는 보름달을 블루문이라고 지칭했다.

이렇듯 때론 과학적 개념은 매우 우연히, 의도치 않게 대중화하기도 한다. 여기에 좋고 나쁨이란 윤리적 잣대를 들이대려는 건 아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개념들이라는 게 사실은 역사와 맥락 속에서 탄생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을 뿐이다. 실제 파란색을 뜻하는 블루문은 화산이나 화재 등으로 연기나 재가 대기 중으로 퍼질 때 나타나기도 한다. 하지만 언제 파란빛을 띠는 달이 나타날지 예측하긴 힘들다.

지난주 개기월식 때 오랜만에 실컷 밤하늘을 보았다. 슈퍼 블루 블러드문(super blue blood moon) 덕분이다. 온 동네 사람들이 각 건물 꼭대기에서 같은 하늘을 보며 탄성을 질렀다. 달은 슥 사라졌다가 붉은 보름달로 만개한 후 원래 색깔로 돌아왔다. 월식은 달이 지구의 그림자에 가려질 때 발생한다. 슈퍼 블루 블러드문은 1866년 처음 관측됐다. 1982년 후 이번에 관측됐고 2037년에 재등장할 예정이다.

그런데 정말 엄밀히 따지면 이번 관측이 슈퍼 블루문이 아닐 수도 있다. 딴죽을 거는 건 아니지만 미항공우주국(NASA)은 블루문이 뜨기 하루 전을 슈퍼문이라고 했다. 즉, 달의 궤도에서 지구에 가장 근접했던 날은 1월 30일경이었고 아직 보름달이 뜨기 전이었다. 그럼에도 NASA는 기꺼이 ‘슈퍼문’이라고 지칭했다. 슈퍼문은 달이 지구와 제일 가까워지며 보름달까지 나타나는 현상이다. 지구와 달 사이의 평균 거리는 38만4400km다. 슈퍼문은 2만∼3만 km 더 가까워진다. 슈퍼문은 평소보다 최대 14% 더 크고 30% 더 환하다. 이번 슈퍼문은 7% 더 크고 14% 더 밝았다.

또 일부 지역에선 시간 차이 때문에 블루문이 아닌 경우도 있었다. 2시간 미만이라는 간발의 차이로 호주 멜버른에선 두 번째 보름달이 2월로 넘어가 버렸기 때문이다. 달은 시공간의 차이로 발생하는 시각의 차이까지 교훈으로 선사했다. 첫 번째 보름달은 1월 1일 밤과 1월 2일 아침 사이에 나타났다. 1월 31일에 두 번째 보름달이 보였기에 블루문이라고 부른다.

현재 대중적으로 쓰이는 블루문의 뜻은 1980년대 미국의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명명하며 사용되기 시작했다. 블루문은 2.7년마다 나타난다. 왜냐하면 음력과 태양력이 1년에 354.36 대 365.24만큼 차이 나기 때문이다. 지구가 태양을 한 바퀴 도는 데 걸리는 시간은 태양력으로 정확히 365.24220일이다. 2만5000년 전부터 시작된 음력에선 한 달이 29.53일로 30일 혹은 31일보다 적다. 따라서 어느 땐 윤달을 넣어서 차이를 없앤다.

달(lunar 혹은 moon)의 어원은 ‘변덕스럽다’ 혹은 ‘측정하다’는 뜻의 고어이다. 달은 조금씩 변하는 것처럼 보인다. 따라서 달의 변덕은 음력으로 시간의 기준을 제시하는 데 활용됐다. 인류가 최초로 시간의 개념을 갖기 시작한 것이다. 초승달과 보름달은 눈으로 확연히 구분 가능하고 주기가 28∼29일로 반복돼 기억하고 셈하기 쉬웠다. 음력이 사용된 이유다.

블러드문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달에 붉은빛이 감돌기 때문이다. 지구가 태양을 가리면 달은 보이지 않고 깜깜해야 한다. 그런데 왜 붉은색을 띨까. 그 까닭은 파란빛이 대기층에서 산란돼 없어지고 빨간빛만 통과하기 때문이다. 해질녘이 불타오르는 것처럼 보이는 것과 같다.

이번에 슈퍼 블루 블러드문을 봤다면 정말 행운아다. 모든 곳에서 쉽게 이 독특한 달을 관측할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일부 남부지방에선 흐린 날씨 탓에 슈퍼 블루 블러드문을 볼 수 없었다. 남미나 서유럽, 아프리카 등에선 지상 최대의 우주쇼인 슈퍼 블루 블러드문을 보기가 어려웠다. 달은 왜 봐야 하는 것일까. 달이 중요하고 이번엔 우연이 연속으로 겹쳤기 때문이다. 달은 어둠을 밝히는 인류 제일의 전구이다. 또 개기월식은 지구와 달의 각 공전궤도면이 5도 9분 기울어져 있어 흔한 현상이 아니다.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은 달을 인류 최초의 TV라고 했다. 소원을 빌며 이야기가 재생되기 때문이다. 슈퍼 블루 블러드문은 흑백TV가 빨간 컬러TV로 바뀌는 예술이었다. 덩달아 나도 작은 소원을 하나 빌었다.

김재호 과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