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순간 빛난 시민정신 보호자들 사다리차 붙잡아주고 다른 환자 먼저 피신시킨 10대도
한 사람의 손길이라도 더 필요한 순간이었다. 검은 연기는 병원을 휘감고, 안에 사람이 얼마나 있는지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 26일 오전 화마에 휩싸인 경남 밀양시 세종병원 앞에는 애가 탄 보호자들과 시민들이 모였다. 이들은 환자들에게 담요를 덮어주고 업거나 부축했다.
불이 막 번지기 시작한 이날 오전 8시경 병원 앞에 있던 시민 20여 명은 뒤도 보지 않고 구조에 나섰다. 야간근무를 마치고 귀가하던 우영민 씨(26)는 “사람들이 병원 창문으로 살려달라고 손을 흔들었다. 다른 시민들과 함께 이불을 펴서 뛰어내리는 사람들을 받았다”고 말했다.
보호자와 가족도 뛰어들었다. 간호조무사 김모 씨(37)의 남편 김모 씨(37)는 “불이 났다”는 아내의 전화를 받고 병원으로 달려갔다. 아수라장이 된 응급실 앞에서 정신을 잃은 환자들을 직접 구급차까지 옮겼다. 어머니가 2층에 입원해 있던 손모 씨(49)는 사다리차와 소방슬라이드(미끄럼틀형 구조기구)가 흔들리지 않게 밑에서 잡고 받쳤다. 더 이상 구할 사람이 없다는 소방관 말을 듣고는 기구가 얼지 않도록 옆으로 치워뒀다. 그러나 이들의 아내와 어머니는 모두 숨졌다.
밀양=최지선 aurinko@donga.com·사공성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