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가조사위 ‘행정처 PC’ 조사 결과
○ 조사보고서에 블랙리스트 언급 없어
조사위는 37쪽 분량의 결과 보고서에서 ‘블랙리스트’라는 표현을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다. 조사위는 “블랙리스트 개념에 논란이 있으므로 그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다”는 입장도 밝혔다. 당초 이번 추가 조사가 블랙리스트 존재 유무를 확인하기 위한 목적에서 이뤄졌기 때문에 블랙리스트 의혹을 뒷받침하는 자료는 없었다는 취지로 보인다.
법원행정처는 대법원이 추진하는 사안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낸 특정 법관이 특정 연구회 회원인지, 정치적 성향은 어떤지 등을 파악했다. 또 법원 내부 통신망을 비롯한 페이스북, 포털사이트 익명 카페 등 개인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린 글을 파악해 문건을 작성했다. 이를 바탕으로 핵심그룹과 주변그룹, 진보와 보수, 강성과 온건 등으로 법관을 분류하기도 했다.
2015∼2016년 국제인권법학회의 소모임인 ‘인권을 사랑하는 판사들의 모임(인사모)’의 동향을 기록한 문건, 인사모의 학술대회를 축소하고 고립시키는 방안이 담긴 문건도 문제의 소지가 있다고 조사위는 지적했다.
법원행정처가 박근혜 정부 시절 청와대와 연락을 주고받으며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67·구속 기소)의 항소심 형사재판을 맡은 담당 재판부에 대한 동향을 파악한 정황이 담긴 문건도 공개됐다. 문건에는 법원행정처가 ‘우회적·간접적인 방법으로 재판부의 의중을 파악하고 있음을 알리는 한편 1심과 달리 결과 예측이 어려워 (법원)행정처도 불안해하는 입장’을 민정라인을 통해 보고했다는 내용이 있다. 원 전 원장이 항소심에서 법정 구속된 후 우병우 전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51·19기)이 ‘사법부에 대한 큰 불만을 표시했다’는 내용도 담겨 있다.
○ “실체 없었다” vs “청와대 교류 충격적”
법관들의 반응은 엇갈렸다. 블랙리스트가 없었다는 사실에 안도하면서도 특정 법관에 대한 동향을 파악한 것에 놀라움을 표시하기도 했다. 서울지역 법원의 한 부장판사는 “프레임의 힘이란 게 무섭다. 동향 파악과 인사 불이익은 다른데 ‘문화체육관광부 블랙리스트’처럼 보여서 그럴듯하게 보였지만 실체는 없었다”며 “몇몇 법관이 제기한 의혹이 사법부 전체에 타격이 됐다”고 말했다. 반면에 다른 부장판사는 “정치적으로 중요한 재판을 전후해 독립을 지켜야 할 사법부가 청와대와 교류를 했다는 것이 충격적”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김 대법원장은 이날 퇴근하면서 조사 결과 발표와 관련해 “보고서 내용을 잘 검토하고 있다. 심사숙고해서 조만간 입장을 정리해 발표하겠다”고 말했다.
전주영 aimhigh@donga.com·이호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