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희 논설위원
지난 며칠 사이 세 차례 회담에서 남북은 일사천리로 합의를 이끌어냈다. 비공개 회담인지라 막후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알 수는 없지만 북측과의 회담에서 이처럼 순조로운 합의는 이례적인 것만은 분명하다. 신년사에서 평창 올림픽의 성공을 “진심으로 바란다”고 했던 수령의 특별한 교시가 없었다면 보기 힘든 상황이리라.
“쇼가 곧 시작됩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게 어차피 한 판의 쇼다. 어쩌면 식상할 수도 있다. 이미 한두 차례 본 적 있는 장면들에 과거 같은 감동이나 열광은 없을 것이다. 혀를 차거나 넌더리를 내는 이도, 또 속는 것 아니냐며 분노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벌써부터 남북 회담 결과를 두고 우리 사회 내부의 논란이 크지만 이번 쇼는 남북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성사된 거래다.
지난해 한껏 무력시위를 벌인 북한은 이젠 한숨 쉬어가며 이미지 관리를 할 때가 됐고, 우리로서도 북한의 올림픽 참가로 흥행에 적지 않은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계산이 있다. 북한도 우리를 이용하고, 우리도 북한을 이용한다. 특히 전쟁 위기 속 불안한 올림픽이 아닌, 평화 분위기 속 안전한 올림픽이 치러진다면 우리로서는 꽤나 수지맞는 장사로 볼 수도 있다.
그러니 쇼는 쇼대로 구경하면 된다. 다 차려놓은 잔칫상을 뒤엎겠다는 옆집 불량배를 담 건너 불안하게 지켜보는 것보다는 일단 불러다 앉혀놓는 편이 낫다. 꼴불견 손님도 쫓아내기보다는 달래는 것이 낫다. 주인 행세를 하는 식객에 자존심이 상할 수도 있겠지만 잔치를 잘 마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혹자는 북한의 선전선동에 휘말릴 수 있다고 우려하지만, 거기에 혹할 우리 국민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관람료는 후불입니다”
청구서는 미국에서도 날아올 수 있다. 남북회담 성사가 자신의 강경한 태도 덕분이라고 자화자찬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향후 북-미 대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기대감을 한껏 부풀렸다. 당장은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자는 덕담이겠지만 뜻대로 굴러가지 않으면 남북 모두 각오해야 할 것이라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한바탕 쇼가 끝나면 한반도는 북-미 결전의 장으로 돌아갈 가능성도 여전히 높다. 그땐 모두가 냉정하게 정산을 다시 할 것이다. 쇼 계약이 마무리된 지금, 우리가 책잡히는 일은 없었는지 점검할 때다.
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