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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판권의 나무 인문학]속이 꽉 찬 ‘100점 열매’

입력 | 2018-01-16 03:00:00

<29> 탱자나무




탱자나무 열매는 진실하고 원만한 삶을 상징한다.

운향과의 갈잎떨기 탱자나무는 탱글탱글한 열매가 열려서 붙은 이름이다. 탱자나무의 열매는 지실(枳實)이라 부른다. 탱자나무의 열매는 같은 과의 귤이나 등자나무의 열매와 닮았다. 탱자나무의 열매는 약으로 사용한 탓에 조선시대 일부 지역에서는 조공(租貢)의 대상이었다. 조공에 지친 백성들은 탱자나무를 베어버리곤 했다. 탱자나무의 하얀 꽃은 잎보다 먼저 핀다. 다섯 장의 꽃잎은 가시의 보호를 받으면서 벌과 나비를 유혹한다. 탱자나무의 잎은 학명 중 종소명 ‘트리폴리아타(trifoliata)’에서 보듯이 세 개씩 달린다. 그래서 영어권에서는 탱자나무를 ‘트라이폴리에이트 오렌지(Trifoliate orange)’라 부른다.

탱자나무의 가시는 이 나무를 울타리로 삼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탱자나무로 만든 울타리는 도적을 막거나 죄인을 가두는 데 이용했다. 조선시대 ‘관방집록(關防集錄)’과 ‘해동잡록(海東雜錄)’에서는 탱자나무를 이용한 목책(木柵) 사례를 확인할 수 있다. 특히 강화도 역사박물관 옆에 살고 있는 갑곶리 탱자나무(천연기념물 제78호)와 강화도 명미당(明美堂) 이건창(李建昌) 생가 앞에 살고 있는 사기리 탱자나무(천연기념물 제79호)는 탱자나무 울타리로 몽골군을 방어한 역사 현장이자 우리나라에서 아주 귀한 탱자나무 천연기념물이다. 두 곳의 천연기념물 탱자나무는 모두 수령 400년 정도다.

탱자나무는 큰 죄를 지은 자에게 벌주는 위리안치(圍籬安置) 혹은 위극안치(圍棘安置) 때 사용했다. 이 같은 단어는 죄인이 사는 집 둘레에 탱자나무로 울타리를 했기 때문에 생겼다. 나도 탱자나무 울타리가 있는 집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가을에 벼를 벤 후 논에서 잡은 고둥을 삶아서 탱자나무 가시로 빼 먹던 추억은 아직도 탱자나무 꽃 향만큼 아름다울 뿐 아니라 허기까지 달래준다.

탱자나무의 열매는 둥글면서 속이 꽉 차서 원만(圓滿)하다. 원만한 삶은 빈틈없고 진실해야만 가능하다. 탱자나무의 열매처럼 탱글탱글한 모습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일상의 삶이 원만해야 한다. 원만한 삶은 순리대로 사는 것이다. 순리대로 살지 않으면 중국 전한(前漢)의 ‘회남자(淮南子)’ 원도훈(原道訓)에 언급된 것처럼 강남의 귤이 탱자나무로 변해 버린다.

강판권 계명대 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