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과 악, 흑과 백… 이분법적 사고방식 트럼프와 김정은도 세계를 둘로 갈라 태극기와 촛불도 서로에 마음 열기를
박일호 이화여대 조형예술대 교수
카시러는 이 상징체계들이 우열 관계라기보다 세계를 이해하는 서로 다른 방식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우열 관계를 인정하지는 않지만 신화적 사고가 현대사회에 끼치는 영향을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의 마지막 저서인 ‘국가의 신화’는 이런 배경에서 나왔다. 여기서 신화적 사고나 상징에 의해 조종되는 비이성적인 세력이 문명인의 정신을 어떻게 파괴하고 위협해 왔는가를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밝히고 있다. 그리고 신화적 사고에 따라 움직인 가장 대표적인 형태가 제1,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독일의 전체주의 정권이라고 주장했다.
신화가 어떻게 이토록 위험한 것이 될 수 있을까. 우선 신화가 세계를 선과 악, 나와 너, 흑과 백 등의 양자 대립 구도로 나누고 서로 배타적인 범주로 다룬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태양신을 숭배하는 나라의 신화는 태양신을 숭배하지 않는 나라와의 차이점을 바탕으로 자신의 관점을 합리화하려 한다. 신화의 또 다른 특징은 세계를 객관적으로 보지 않고, 감정을 통해서 이해하고 감정을 통한 유대감을 강조한다는 점인데, 이 점이 신화의 양자 대립 구도를 떠받치게 된다. 이렇게 만들어진 신화는 불가해한 자연 현상의 기원이나 의미를 초자연적 존재를 빌려 설명하는 이야기가 되지만, 그것을 넘어 사람들이 사회를 이해하는 기준과 규범이 되기도 한다. 따라서 원시인과 고대인의 세계에서 신화가 그들의 생각과 행동을 규제하고 강요하는 비합리적 이념의 역할을 한다는 것이 카시러가 우려하는 신화적 사고의 문제점이다.
이렇듯 위험하고 거친 신화의 시대를 헤쳐 나가야 할 우리는 지금 어떤가. 태극기와 촛불이라는 상징물로 자신들의 관점을 합리화하고, 그것을 보수와 진보 간의 대립으로 몰아가려 한다. 촛불은 일부 계층과 세력의 소유물이 아니라 변화를 원하는 우리 모두가 전국의 광장을 가득 메우며 들었던 상징물이고, 태극기 또한 4강 기록을 이룬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우리 모두가 환호할 때 함께 거리를 뒤덮었던 상징물인데 말이다.
하지만 필자는 더 많은 다수가 지금의 이런 모습을 우려하고 안타깝게 생각하며 우리 사회를 떠받치고 있다는 것을 보고 있고, 듣고 있다. 그래서 이제 태극기와 촛불이라는 상징물로 우리 모두가 같은 곳을 바라보고 같은 것을 이루려는 모습을 되찾을 수 있다고 믿고 싶다. 그리고 지금은 대립하지만 더 큰 발전을 위해서는 언제든지 서로에게 마음을 여는 진보와 보수의 화합도 기대한다. 그러려면 양자 대립적 구도와 감정적 공감대에 의존하는 신화적 사고의 유혹부터 멀리 떨쳐버려야 한다는 주장과 함께.
박일호 이화여대 조형예술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