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승권 제주자치경찰단장·변호사
첫째, 자치경찰제는 큰 틀에서 치안은 경찰청이, 치안서비스는 자치경찰이 담당하는 제도다. 자치경찰은 범죄 예방 및 진압 업무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도로 파손, 교통시설물 고장, 교통질서 유지, 순찰 등 치안서비스를 맡는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치안과 치안서비스를 구분하기 어렵다. 단적으로 경찰도 아닌데 왜 나서느냐는 주민의 빈축에 별다른 대응을 하지 못한다.
둘째, 치안서비스는 기본 업무조차 제대로 수행하기 어려운 구조적 한계를 갖고 있다. 어떤 사고나 재해가 발생하면 경찰청 소속 지구대, 소방서가 출동하고 심지어 동사무소 직원들도 달려간다. 그러나 자치경찰은 사고가 발생했다는 사실조차 파악하지 못해 출동은 엄두를 낼 수가 없다. 지구대 같은 하부조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재정 효율성을 고려할 때 치안서비스만 담당하려고 지구대 등 상시근무 조직을 만들 수 없는 형편이다.
넷째, 인력과 예산에 대한 국가적 지원이 현저히 부족하다. 현재 제주자치경찰이 맡은 업무 대부분은 중앙경찰과의 공동사무다. 그러나 정부의 지원은 당초 이관된 인력에 대한 인건비 및 운영비 일부를 빼면 거의 없다. 권고안도 이관된 인력 이외에 더 이상 국가적 지원은 없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이번 권고안은 현실적인 검토가 크게 부족한 것으로 보인다. 더 깊이 있고 다양한 관점에서 성공적인 자치경찰제를 추진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최근 국가보안 등 광역수사 기능만 중앙경찰이 맡고 나머지는 모두 자치경찰이 맡는 전면적 자치경찰제 등에 대한 논의도 진행되고 있다. 제주자치경찰단처럼 별다른 경찰권을 부여하지 않고 일률적으로 대민 행정업무만 자치경찰에 대폭 이관하면 실패할 수밖에 없다.
나승권 제주자치경찰단장·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