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만영화 ‘신과 함께’가 퍼뜨린 공감의 메시지 ‘착한 끝은 있다’ 저승 아닌 이승에서 받는 선행의 보상, 運의 법칙 운은 도덕성에서 싹트고 노력한 만큼 모을 수 있지만 무거운 책임이란 것도 기억해야
고미석 논설위원
‘신과 함께’에서 감동을 받은 이라면 어쩌면 새해 목표로 운동, 외국어 공부 같은 항목에 ‘착하게 살자’ 하나를 더 추가해 마음을 다잡았을지도 모른다. 이 영화가 저승세계의 심판을 통해 오늘의 삶을 성찰하게 한다면 일본 변호사 니시나카 쓰토무의 책 ‘운을 읽는 변호사’는 보다 현실적으로 접근한다. 선한 마음과 행동은 사후가 아니라 생전에 도움이 된다는 주장이다. 1만 명 가까운 의뢰인의 행불행 유형을 분석해보니 운을 부르는 습관은 도덕적 감성에 귀결되더라는 것. 사후 심판은 멀게 느껴질지 몰라도 이승의 행운이라면 귀가 솔깃해질 것이다. 그는 단언한다. 내가 받은 은혜는 ‘도덕적 부채’라고. 이 엄연한 빚을 제 것처럼 당연하게 여기는 오만함이야말로 운을 갉아먹는 곰팡이라고. 그러면서 덧붙인다. 불운을 피하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인생이라고.
권선징악만큼 유구한 토정비결이 앱으로도 대목을 맞은 것을 보면 새해 운수에 대한 호기심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것 같다. 운이 좋다는 말은 대개 투입한 노력보다 좋은 결과가 나올 때 쓴다. 특히 요즘은 돈복, 재운(財運)을 격렬히 탐한다. 하지만 니시나카 씨의 경험에 비추면 이는 되레 독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 유념할 대목이다.
케이블 방송에 소개된 일드 ‘중쇄를 찍자’에 보면 운 총량의 법칙이 나온다. 드라마에 등장한 대형 출판사 사장은 우연히 얻은 1등 복권을 돈으로 바꾸지 않고 손녀딸의 종이접기용으로 내준다. ‘태어날 때 운은 달라도 좋은 일을 하면 운은 모을 수 있다.’ 방황하던 젊은 시절, 이 한마디를 듣고 평생 화두로 삼은 그는 일상 속 선행으로 차곡차곡 운을 쌓는다. 그리고 정해진 운의 할당량이 있다면 자신이 가장 가치 있게 여기는 일에 사용하겠다는 결심으로 돈 욕심을 내려놓았다. 돈의 독에서 풀려난 것이다.
인생의 길흉화복은 맞물려 돌아간다고 했던가. 한번 운이 좋으면 다른 길에서 막다른 골목과 마주칠 수 있는 법. 예전 TV에서 평범한 중년여성이 운을 정의하는 방식을 듣고 무릎을 쳤다. “운(運)과 공(功)은 같은 말이다. 왜 나는 지지리도 운이 없을까 고민하다가 문득 공을 더 들이라는 뜻임을 깨달았다. 그래서 불평하기보다 노력했고 원하는 것을 더 많이 성취했다.” 나보다 훌륭한 재능에도 나보다 운이 박한 사람이 있고 그 반대도 있다. 게으르게 불평하는 내가 있고 그 반대도 있다. 비교 대상은 나 자신뿐. 곁눈질할 필요는 없다.
한창 운이 좋다 해도 오만은 금물. 돈이든 재능이든 권력이든 하늘의 호의가 계속된다 해서 내 권리로 착각해선 안 된다. ‘오만은 신이 내린 천형(天刑)’이란 말이 왜 생겼을까. 내가 들인 공보다 과하게 누리는 운은 언젠가 세상에 되돌려줘야 할 빚이다. 한없이 무거운 책임을 느껴야 한다. 아니면 죄가 되고 벌이 된다.
고미석 논설위원 mskoh11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