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광화문에서/길진균]소통대신 홍보 나선 靑 참모들

입력 | 2017-12-26 03:00:00


길진균 정치부 차장

5월 10일 정오 국회 로텐더홀. 문재인 대통령 당선인이 처음 국민 앞에 섰다. 취임식은 30분을 넘기지 않았다. 헌정사에서 가장 작은 취임식이었다. 문재인 정부가 추구하는 ‘탈권위’를 압축적으로 보여준 행사였다. 국민은 환호했다. ‘새로운 대한민국’의 기치를 든 문 대통령은 국민과의 ‘소통’을 수차례 강조했다.

“국민과 수시로 소통하는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주요 사안은 대통령이 직접 언론에 브리핑하겠습니다.”

어느새 7개월이 지났다. 야당은 ‘쇼통령’이라고 비난하지만 대통령이 사회적 약자와 평범한 시민에게 고개를 숙이는 모습은 신선하게 받아들여졌다. 청와대의 소통·감성 정치에 지지층은 환호했다. 문 대통령의 지지율은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이제 임기 1년 차보다 몇 배는 중요한 임기 2년 차가 시작된다. 문재인 정부의 국정운영 5개년 계획에 따르면 2018년은 과감한 개혁과제 이행과 정책 추진 기반을 구축하는 ‘혁신기’의 마침표를 찍는 해다. 곳곳에 벌여 놓은 적폐 청산 작업들을 시스템으로 완성해야 할 책임이 뒤따르는 시기다. ‘신한국 창조’를 앞세웠던 김영삼 전 대통령 역시 금융실명제, 국가안전기획부(국가정보원의 전신) 개혁, 하나회 척결 등 주요 업적을 모두 임기 1, 2년 차에 완성했다.

이를 위해선 무엇보다 지지율이 뒷받침돼야 한다. 적어도 국민 절반 이상의 지지를 이어가는 것이 핵심이다. 소통과 홍보가 더욱 중요하다는 뜻이다.

문재인 청와대의 홍보 능력은 얘기를 꺼낼 필요가 없을 정도로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래서인지 “비서는 말이 없다”는 과거의 격언과 달리 청와대 비서진도 앞다퉈 대국민 홍보에 뛰어들고 있다. 공식 공보라인을 제외하고도 민정수석비서관은 국민청원을 통해 입법, 행정, 사법 각 분야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있다. 또 뉴미디어비서관은 ‘청쓸신잡’을 이끌며 청와대의 뒷얘기를 직접 전하고 있다. 틈틈이 비서실장도 마이크를 잡는다.

정작 매달 기자회견을 통해 국민과 직접 소통하겠다고 공약했던 문 대통령은 취임 후 단 한 차례만 공식 기자회견을 했다. 미국 등 주요국들이 정책 혼선이나 불필요한 오해를 피하기 위해 메시지 창구를 대통령 또는 대변인으로 사실상 일원화하고 조율된, 정제된 언어만 내보내는 것과 사뭇 다른 모습이다. 더불어민주당의 한 중진 의원은 “대통령비서진이 청와대의 ‘말’에 담기는 엄중함과 무게감을 잘 모르는 것 같아 걱정”이라고 했다. 비서진의 과도한 ‘활약(?)’이 대통령에게 약이 아닌 독이 될 수 있다는 우려를 에둘러 표현한 것이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소통 대통령으로 불렸다. 한발 앞서 TV 앞에서 국민과 대화했다. 그는 8년 재임 기간에 모두 158차례 기자회견을 했다. 연평균 20회다. 한 시간 넘도록 기자들과 즉문즉답을 했다. 반면에 박근혜 전 대통령 재임 4년여 동안 공식 기자회견은 4회에 그쳤고 그나마 짜인 각본에 따른 회견이었다.

지금 청와대의 홍보는 지지층의 여론을 강화하는 방향으로만 접근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홍보가 전면에 나서고 토론이 배제되면 소통은 불가능해진다. 주변이 적극적 지지자로 채워지면 대통령은 소외되고, 비판적 지지자들은 대통령에게 등을 돌리게 된다. 지난 정부에서도 대통령이 질문을 받지 않고 답변도 하지 않으면서 신뢰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무술년에는 청와대의 홍보가 아닌 국민과 소통하는 대통령의 모습을 자주 보고 싶다.

길진균 정치부 차장 le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