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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 내일/서영아]메이지유신 150주년의 명암

입력 | 2017-12-19 03:00:00


서영아 도쿄 특파원

내년은 일본에서 1868년 메이지 연호가 시작된 지 150주년 되는 해다. 메이지유신 시대는 일본 역사가 가장 역동적으로 움직인 낭만적인 시기다. 서쪽의 ‘촌놈’들이던 조슈(현재의 야마구치현)와 사쓰마(가고시마현)의 젊은 사무라이들이 메이지 덴노(天皇)를 내세워 260년 에도 막부를 무너뜨리고 새 국가체제를 구축했다. 이런 과정에서 풍운처럼 살다간 유신 주역들의 삶의 역정은 ‘료마가 간다’ ‘언덕 위의 구름’ ‘바람의 검심’ 등 소설과 만화, 드라마의 소재로 사랑받아 왔고 한국에서도 팬층이 두껍다.

실제로 그들이 일본의 주도권을 쥔 데는 획기적인 근대화의 성취, 그 과정에서 보여준 진취적 개혁정신이 자리 잡고 있었다. 한국도 배워야 할 것이 많다.

삐딱하게 보자면 이 시기는 일본이 침략팽창주의로 방향타를 잘못 잡은 출발점이기도 하다. 메이지유신의 사상 기반을 제공한 요시다 쇼인이 일본의 미래를 대외팽창에서 찾았고, 이에 심취한 젊은 제자들이 나라의 키를 잡았기 때문이다.

특히 메이지유신을 주도한 조슈의 패권은 이후 150년 동안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 지난여름 아베 신조 총리가 지지율 급락으로 궁지에 빠졌을 때, 일본의 한 원로 기자는 “아베 총리, 아니 그 어머니 요코 여사(기시 노부스케의 딸)의 염원은 ‘메이지 150주년’인 내년까지 총리 자리를 지키는 것”이라고 귀띔해줬다. 일본의 초대 총리는 이토 히로부미였고 메이지유신 50주년은 조선총독을 지냈던 데라우치 마사타케, 100주년은 사토 에이사쿠 등 소위 ‘꺾어지는’ 해의 총리는 모두 조슈 출신이었다. 150주년의 해에 아베 총리가 건재하다면 말 그대로 “일본의 근현대사는 조슈가 이끌어왔다”고 자부할 수 있다는 얘기였다.

반대로 일본 내에서 조슈 패권을 견제하려는 움직임도 감지된다. 가령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당시 막대한 피해를 본 후쿠시마 등 도호쿠 지역은 메이지유신 과정에서 벌어진 보신전쟁에서 막부의 편에 선 대표적인 적군 지역이다. 이들 적군 지역의 한(恨)은 현재진행형이다. 지난여름 한 주간지는 “일본의 원전 54기 중 46기가 적군 지역에 집중돼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4월 일본의 부흥상이 “(대지진 장소가) 도호쿠 지방이라 다행”이란 망언으로 단칼에 목이 날아간 일도 따지고 보면 뿌리 깊은 역사적 배경을 가진 것이다.

그래서인지 2017년이 저물어가는 요즘 일본에서 ‘메이지 150년’은 생각만큼 분위기가 뜨지 않는다. 일본 정부는 2015년부터 ‘150주년 준비위원회’를 구성했지만 어쩐지 숨어서 일하고 있다는 느낌마저 든다. NHK가 내년 대하드라마 주인공을 사쓰마 출신 사이고 다카모리로 정한 정도다.

이런 가운데 최근 차세대 육상배치형 ‘이지스 어쇼어’ 2기가 북쪽은 아키타, 남서쪽은 야마구치의 하기시에 각각 배치될 예정이란 소식이 전해졌다. ‘하기’는 말 그대로 요시다 쇼인이 쇼카손주쿠를 세운, 메이지유신의 정신적 태동지다. 나아가 내년까지 야마구치현에 자리한 이와쿠니 기지는 전투기 120대가 결집해 미군의 극동 최대급 항공기지가 될 예정이다. 우연이겠지만 상징적인 느낌이 들지 않는 건 아니다.

그간 아베 총리를 지원하는 우익 세력들은 메이지 헌법을 이상적인 헌법으로 여기고 패전 이전의 일본으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는 지적이 적지 않았다. 당장 아베 총리 주변의 보수계 인사들은 메이지 덴노의 탄생일인 11월 3일 ‘문화의 날’의 명칭을 ‘메이지의 날’로 바꾸자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국제질서에서도 일본의 재무장이 용인되면서 아베 일본호가 메이지유신의 정신을 어떻게 살려 나갈지 관심이 간다.

서영아 도쿄 특파원 sy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