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강정마을 구상권 철회]
제주 해군기지 반대운동이 한창이던 2012년 3월 강정마을 주변 건설 현장의 혼란한 모습. 당시 시위대는 펜스를 뚫고 부지로 들어가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동아일보DB
○ 불법시위 손실을 ‘혈세’로 메우고 ‘면죄부’까지
이 결정은 지난달 30일 원고(정부)에 송달됐다. 재판 당사자는 결정을 받은 뒤 2주 내에 수용 여부를 법원에 통보해야 한다. 정부는 통보 시한(14일)을 이틀 앞두고 구상권 철회 결정을 내린 것이다.
군 안팎에선 충분히 예견됐던 일이라는 반응이 나온다. 대선 직후 청와대와 국무조정실 주도로 제주 해군기지의 구상권 철회 논의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군 소식통은 “해군 내 반대 기류를 무시하고, 군이 스스로 말을 뒤집는 모양새가 됐지만 정부 결정에 따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번 결정으로 기지 공사를 방해한 시위대(개인 116명, 단체 5개)를 상대로 제기된 손해배상 청구액(34억5000만 원)은 혈세로 메워야 한다. 앞서 국방부는 2015년에 강정마을 대책위 소속 주민과 시민단체의 불법적 방해로 공사가 14개월가량 지연돼 발생한 손실액(약 275억 원)을 시공사(삼성물산)에 물어준 바 있다. 이 중 34억5000만 원이 시위대에 배상책임(구상권)이 있다고 보고 군은 구상권 소송을 제기했다. 국방부 관계자는 “시공사에 지급한 금액은 방위력 개선비로 충당했다”고 말했다. 제주 해군기지 건설사업 예산이 방위력 개선비에 편성돼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각에선 무기 획득과 운용 유지, 군사력 건설에 사용할 국방예산을 불법 행위로 초래된 손실 비용에 충당한 것은 적절치 않다는 지적을 하고 있다. 또 다른 시공사와 진행 중인 수백억 원 규모의 공사지연 손실액이 결정되면 이것도 세금으로 메워야 할 가능성이 높다.
○ 강정마을회와 제주도지사는 환영, 야당은 비난
강정마을회는 한시름 덜었다는 분위기다. 다만 제주 해군기지 건설에 따른 갈등 과정에서 정부 발표가 번복되는 것을 많이 경험했다면서 신중한 모습이다. 조경철 강정마을회장은 “실제 강제 조정된 내용이 소송 철회로 확인된 뒤 공식 입장을 내놓겠다”고 말했다. 제주해군기지전국대책회의 등 지역 시민단체들도 “강정마을 공동체의 회복 계기가 되길 바란다”면서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구상권 철회에 앞장섰던 바른정당 소속 원희룡 제주도지사는 기자회견에서 “10여 년간 빚어온 갈등 해결을 위한 기초가 마련됐다. 해당 주민들에 대한 사면 복권도 이뤄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자유한국당은 정부가 전문 시위꾼들에게 굴복했다고 반발했다. 한국당 정용기 원내수석대변인은 “노무현 정부가 결정하고, 현재 국방부 장관인 송영무 당시 해군참모총장이 추진한 정책을 스스로 부정함으로써 말과 행동이 완전히 다른 ‘자가당착’ ‘자기모순’을 보여줬다”고 했다.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ysh1005@donga.com·박훈상·임재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