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수영 정치부 기자
2월에는 바른정당에 보수 후보 단일화 공방이 벌어졌다. 유 의원의 말이 화근이었다. “문재인을 이길 수 있는 보수 후보로 단일화해서 대선을 치러 보자는 게 보수의 대의명분”이라고 했다. 대선 후보 자리를 놓고 경쟁했던 남 지사는 이를 놓치지 않았다. “그럼 왜 탈당을 했나. 그 안에 남아서 후보가 되면 되지”라고 몰아붙였다. 바른정당이 창당대회를 치른 직후였기에 마땅한 지적이었다. 유승민 캠프 의원들이 “유 의원이 실수한 게 맞다. 실수를 그렇게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느냐”며 남 지사를 원망할 정도였다.
그런 남 지사의 말이 요즘 심상찮다. 열차는 한국당 홍준표 대표를 치켜세우며 출발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 출당을 “대표직을 건 승부수”(10월 24일)라고 평했다. 이어 “문재인 대통령이 정치보복의 길로 가고 있다”(11월 18일)고 한국당의 대여투쟁에 힘을 싣는가 하면, 최근 “보수통합이 우선”이라며 국민의당과 통합을 논의 중인 유 대표를 비판했다. 하나씩 보면 틀린 말은 아니다. 다만 수년 동안 여의도를 취재하며 눈치가 생겼다. 정치인이 차곡차곡 말을 쌓을 땐 이유가 있다. 궤도 변경을 위한 명분 쌓기일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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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에 한국당으로 한발 한발 다가가고 있는 남 지사에게 그의 언어로 물어야겠다. 남 지사는 연정(聯政)을 자신의 정치적 브랜드로 삼으며 “보수끼리 뭉치고 진보끼리 뭉치는 진영 싸움은 과거 정치”(2월 9일)라고 했다. 또 “이름 바꾸고 3명 징계했다고 다시 한국당과 손잡자고 한다면 도대체 바른정당이 왜 태어났느냐”(2월 28일)고 물었다. “선거에 불리하다고 뭉쳐보자는 것은 명분이 없다”(3월 20일)고도 했다. 남 지사가 그간 외쳐온 ‘진영을 깨는 정치’는 그저 다른 보수 정치인과 차별화하려는 포지셔닝 전략이었는가.
정치는 생물이라고 한다. 원칙만 고집하는 건 정치가 아니다. 하지만 자신의 핵심 정치 철학을 상황 논리에 쉽사리 내어주는 건 다른 문제다. ‘여의도 언어’의 유통기한이 짧다고 해서 국민이 그 말을 다 잊는 건 아니다.
홍수영 정치부 기자 gae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