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A 우승 이끈 김기태 감독 ‘키워드로 본 리더십’
정규시즌에 이어 한국시리즈까지 제패한 김기태 KIA 감독이 7일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를 찾아 1위를 상징하는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이고 있다. 김 감독은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때 코치로 한국 대표팀의 금메달에 기여한 적이 있지만 프로 유니폼을 입고 우승을 차지한 것은 선수와 지도자를 통틀어 올해가 처음이다. KIA와의 3년 계약 마지막 해에 통합 우승이라는 위업을 이룬 김 감독은 최근 3년간 총액 20억 원 규모로 재계약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김기태 KIA 감독(48)은 끝까지 손사래를 쳤다. KIA가 KBO리그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지난달 30일. 김 감독은 관중석을 향해 큰절을 올리면서 뜨거운 눈물을 쏟았다. 1991년 쌍방울 입단 후 선수, 코치, 감독을 거치면서 처음 맛보는 우승의 감격이었다. 울었다 한들 누가 뭐랄 것도 없지만 김 감독은 끝내 ‘사나이의 눈물’을 감추려 했다. 이 눈물은 여전히 잔잔한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7일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를 찾은 김 감독을 알아본 팬들은 “덕분에 올 한 해 행복했습니다”, “고마웠습니다”라며 인사를 건넸다.
KIA의 우승이 감동적인 것은 김 감독 특유의 리더십에 힘입은 바가 크다. ‘동행(同行) 야구’는 온갖 역경을 뚫고 우승이라는 결실을 거뒀다.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이라는 다섯 가지 키워드로 김 감독의 리더십을 되돌아봤다.
광고 로드중
○ 인(仁)=버나디나를 살리다
시즌 초반 외국인 타자 버나디나는 극심한 부진에 빠져 고개 숙인 날이 많았다. 김 감독조차 퇴출을 심각하게 고려했다. 그러던 어느 날 김 감독은 버나디나가 홀로 더그아웃 의자에 앉아 머리를 쥐어짜는 모습을 봤다. 한때 일본에서 외롭게 코치 생활을 했던 김 감독은 측은지심이 들었다. 그 순간 버나디나를 안고 가기로 했다. 결과는 모든 사람이 아는 대로다. 정규시즌에서 27홈런을 친 버나디나는 한국시리즈에서는 타율 0.526에 7타점으로 펄펄 날았다. 김 감독은 “올해 가장 잘한 것 중 하나가 버나디나를 버리지 않은 것”이라고 했다.
○ 의(義)=깨끗한 야구
올 시즌 KIA는 일관성 있게 깨끗한 야구를 추구했다. 어려울 때 상대방의 신경을 자극하면서 돌파구를 찾는 팀도 있지만 KIA는 달랐다. 김 감독은 “상대팀도 동업자 아닌가. 서로 존중하면서 깔끔한 경기를 하고 싶었다. 두산과의 한국시리즈가 재미있었던 것도 양 팀 모두 깨끗하게 경기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 예(禮)=고개 숙이는 감독
광고 로드중
“팬들 덕분에 우승했습니다” 김기태 감독(왼쪽)을 비롯한 KIA 선수단이 지난달 30일 한국시리즈 우승을 확정지은 뒤 KIA 관중석을 향해 큰절을 하고 있다. 평소 상남자 이미지를 지닌 김 감독이 흘린 눈물은 많은 팬의 눈물샘을 자극했다. 김종원 스포츠동아 기자 won@donga.com
○ 지(智)=선수의 가치를 알아보다
올해 포수 김민식의 가치는 절대적이었다. 이 밖에 이명기, 김세현 등 트레이드로 영입한 선수들 모두 기대 이상의 활약을 펼쳤다. 김민식의 진가는 김 감독이 가장 먼저 알아봤다. 김민식이 SK 소속이던 지난해 후반 KIA와의 경기에서 2루 도루를 여유 있게 잡아낸 게 계기였다. 김 감독은 “민식이와 명기가 오면서 팀의 짜임새가 단단해졌다. 이 선수들이 없었다면 우승도 힘들었을 것”이라고 했다.
○ 신(信)=선수를 믿는 이유
허영택 KIA 단장은 “올해 김 감독은 1위를 하면서도 욕을 가장 많이 먹은 사람일 것”이라고 했다. 사실이 그랬다. 특정 선수에 대한 기용을 문제 삼는 게 대부분이었다. 이에 대해 김 감독은 “성실하고 열심히 하기 때문에 쓰는 것이다. 밖에서는 보이지 않는 선수들의 장점이 있다. 팀을 위해 헌신하려는 선수에게 기회를 주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 P.S 운(運)=운도 실력이다
야구계에는 운칠기삼(運七技三)이라는 말이 있다. 올해 KIA의 우승에는 모든 운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지기도 했다. 한국시리즈 2차전에 나온 두산 포수 양의지의 판단 착오가 아니었다면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지 모른다. 김 감독은 “축구에서도 실력 있는 사람에게 공이 따라간다고 하지 않나. 운도 실력이라고 본다”고 했다. 올해 KIA의 우승 원동력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했다. “팀원 모두가 좋은 마음과 생각으로 좋은 쪽을 바라보려 노력했다. 그 모든 게 한데 뭉쳐 좋은 결실을 맺었다. 우주의 기운이 바로 그런 게 아닐까.”
이헌재 기자 un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