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시간 단축, 공감대 형성됐지만 급격한 단축은 현장에 큰 혼란 불러… 최소 20년 후까지 고려한 대안 마련해야
이우영 한국폴리텍대 이사장
최근 정부는 ‘일자리 정책 5년 로드맵’에서 근로시간 단축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아울러 여야 정치권 및 노사단체 모두 근로시간 단축을 위한 현행 근로기준법 개정의 취지와 필요성에 대해서는 공감하는 분위기다. 다만, 적용 시기 및 산업 업종별 특성이나 기업 규모, 특례업종 지정, 휴일연장수당 등에 관한 견해차가 절충점을 찾지 못하고 있는 형국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근로기준법 개정안 통과가 어려우면 정부의 행정해석을 바로잡는 방안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현행 행정해석은 1953년 근로기준법 제정 이후 일관되게 적용돼 온 것으로 일주일은 토, 일요일을 제외한 5일로 간주하고 이럴 경우 법정 근로시간 40시간, 평일 연장근로 12시간에 휴일 근로시간 16시간을 포함해 최대 68시간의 근로가 가능하다. 만약 정부의 행정해석이 변경돼 최대 근로시간이 주 52시간으로 줄어들면 완충장치가 미비한 상태에서 노동시장은 물론이고 산업현장 전반에 큰 혼란이 우려된다.
현재 논의 중인 근로기준법 개정은 그간 고성장을 전제로 했던 제도나 법규의 낡은 틀까지 포함하는 전반적인 패러다임의 변화여야 한다. 이것은 횡적인 ‘개혁’이 아닌 종적인 ‘혁신’의 관점에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또 앞으로 최소 20년 후 우리 근로환경이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아울러 노동 문제를 둘러싼 이해당사자들뿐 아니라 다양한 전문가가 머리를 맞대야 한다. 급격한 기술 변화가 함께 고려되지 않으면 근로환경과 노동시장도 예측불가의 상황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노동세계의 디지털화로 인해 노동의 시간적 공간적 경계가 사라지고, ‘언제 어디에서’가 아니라 ‘항상 모든 곳에서’ 일해야 하는 시대에 근로시간의 정의는 어떻게 내려야 할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 어쩌면 주당 최대 근로시간에 대한 논의가 더 이상 의미 없을 때도 올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미 세계는 디지털 플랫폼 경제의 도래에 대비하여 새로운 노동정책을 준비하고 있다. 독일의 노동 4.0을 비롯해 스웨덴의 주당 35시간 근로 실험, 프랑스의 재량근로제 및 연결차단권 등 논의의 방향을 보면 근로자의 건강과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는 ‘사람 우선’ 정책이다.
지금까지 우리의 눈부신 산업발전은 ‘빠른 추격자’를 통해 이뤄 왔고, 이제는 ‘선도 실행자’의 위치에서 새로운 도전의 시기를 맞고 있다. 법과 제도의 혁신에서도 선도 실행자의 역할이 필요하다.
근대적 의미의 노동이 정립된 것은 산업혁명이었다. 이제는 새로운 향후 20년의 시야로 노동법 논의에 임해야 한다. 아무도 가지 않은 그 길의 나침반은 상상력과 창의력이다.
이우영 한국폴리텍대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