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m 높이 폭포수가 흐르는 암벽이 6개가 설치된 샤넬 2018 봄여름 컬렉션은 낙관적인 희망을 표현했다. 폭포수와 나무 런웨이 밑의 연못, 투명한 폴리염화비닐(PVC)소재 모자와 부츠는 모두 물과 연결돼 있었다.
압권은 3일 오전(현지 시간) 파리 그랑팔레에서 열린 ‘샤넬 2018 봄여름 컬렉션’ 현장이었다.
그랑팔레 밖은 날카로운 현실 그 자체였다. 유럽을 휩쓸고 있는 테러의 공포를 느꼈다. 보안이 철저했다. 전날 미국에서 일어난 끔찍한 라스베이거스 총격 사건 탓일 수도 있겠다. 입장할 땐 쇼 티켓뿐 아니라 신분증까지 일일이 체크했다. 입구에는 공항에서나 볼 수 있는 보안 검색대가 배치됐다. 다른 점이라면 여행용 가방이 아닌 수백만 원대 샤넬 백이 줄줄이 검색대 위로 이동하는 모습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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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6일(이하 현지시간) 열린 생로랑 컬렉션(왼쪽)은 가장 파리다운 곳으로 떠났다. 에펠 앞에서 펼쳐진 야외 무대는 브랜드의 정체성이 파리에 있음을 보여줬다. 루이비통(오른쪽)은 이달 3일 루브르 박물관 지하의 중세 요새로 떠났다. 코트는 18세기 풍, 액세서리와 슈즈는 21세기 스포티즘이 미묘한 조합을 이뤘다. 이번 컬렉션 오프닝은 하우스 역사 최초로 흑인모델이 맡았다. 주인공인 자나예 퍼먼은 “믿을 수 없는 순간이다. 더 많은 유색인종들이 런웨이를 누비고, 변화를 이끌어 갔으면 좋겠다“고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밝혔다. 파리=AP뉴시스
6년 전 베르동 계곡에 자동차 여행을 떠난 적이 있다. 중앙차선도 없는 좁은 길을 따라 잔뜩 긴장한 채 산을 넘어갈 때쯤 비현실적인 풍경이 나타났다. 에메랄드 빛 호수 위로 옅은 무지개가 걸린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그랑팔레의 인공 ‘베르동 계곡’도 그랬다. 쇼를 찾은 게스트가 절벽의 풍광에 압도돼 놀라기를 기다렸다는 듯 음악이 시작됐다. 동굴 사이로 옅은 무지개를 연상케 하는 트위드 재킷을 입은 모델 카이아 거버가 나타났다. 1990년대 슈퍼스타였던 모델 신디 크로퍼드의 16세 딸이다.
꿈꾸듯 쇼를 보고 호텔로 돌아와 TV를 켰다. 뉴스엔 온통 라스베이거스 총격 사건과 북한의 김정은 얘기였다. 현실은 그랬다. 하지만 파리의 디자이너들은 낙관적인 희망과 순수한 아름다움을 노래했고, 그것이 패션의 속성임을 외쳤다. 셀린 디자이너 피비 필로는 그녀의 SS 컬렉션 직후 기자들에게 말했다.
“낙관적이고 싶었어요. 이 순간 기쁨과 사랑이 넘치길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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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김현수 기자 kimh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