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개교 800주년을 맞은 영국 케임브리지대가 졸업생 존 밀턴의 얼굴을 프로젝터로 형상화하고 있다. 텔레그래프 제공
“진리의 오묘함을 보라. 진리는 특정한 논리나 사고의 방법에 묶여 있을 때보다 자유롭고 자율적일 때 더 빨리 자신을 드러낸다. (중략) 진리와 허위가 맞붙어 논쟁하게 하라. 누가 자유롭고 공개적인 대결에서 진리가 불리하게 되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진리를 향한 논박이 허위를 억제하는 가장 확실하고 좋은 방법이다.”
당시 출판물에 대한 통제를 위해 선포된 영국 왕실의 면허령에 반대하기 위한 존 밀턴의 반박문 ‘아레오파지티카’(1644)에 나오는 명문입니다. 이로 인해 밀턴은 언론 자유의 선구자로 불립니다.
대의제의 대안이 될 만한 여러 제도가 있습니다. 최근에는 숙의민주주의(deliberative democracy)라는 말이 자주 거론됩니다. 정보가 충분히 제공되는 가운데 자유로운 토론과 의견 개진을 통해 깊이 생각하여 결정하는 합리적이고 민주적인 의사 결정 방식입니다. 시민 토론, 전문가 토론 등 다양한 방식의 격론 과정을 거친 후 다수결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단순 다수결과는 다릅니다.
원전 신고리 5·6호기 건설 중단 여부를 놓고 공론 투표에 참여하는 시민참여단 471명이 14일 종합토론을 마치고 최종 투표를 마쳤습니다. 원전의 안전성, 환경성, 경제성 등을 놓고 3개월 동안 시민참여단, 전문가, 지역 주민들이 공론 과정에 참여했습니다. 결과는 이달 20일이면 발표됩니다. 대통령은 그 결과를 그대로 수용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우리의 성숙한 시민 의식과 민주적 태도입니다. 자신의 주장과 다른 결론이 도출되었다고 해서 불복하는 것은 성숙한 태도가 아닙니다. 자신의 생각이 틀릴 수 있음을 인정하는 개방적 태도가 요구됩니다. 제한된 경험과 정보만으로는 태양이 지구를 돈다 해도 믿었겠지요. 그러니 자신의 생각만이 옳다고 고집하는 것이 얼마나 무모한지 역사와 과학이 증명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에너지 정책의 향방을 가를 중요한 공론 투표의 결과가 나오기 직전, 존 밀턴이 떠오릅니다. 정보의 왜곡됨 없이 자유롭게 토론하며 소통하는 가운데 진실이 드러나는 세상이야말로 우리의 낙원(樂園)이 아닐까요.
박인호 용인한국외대부고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