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민·경제부
이처럼 국민연금의 운용 및 관리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런데도 세계 3위 규모의 연기금을 운용하는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는 오히려 퇴보하고 있다.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에 연루되면서 이사장이나 기금운용본부장 같은 핵심 요직은 수개월째 공석이다. 올 2월 전북 전주로 이전한 뒤로는 운용 전문가들의 잇단 이탈로 정원도 채우지 못하는 실정이다. 실장급인 수석운용직은 정원 14명 중 7명이, 실무책임자인 팀장급은 47명 중 12명의 자리가 비어 있다. 조직의 ‘허리’가 끊긴 셈이다.
조직 내부의 사기도 떨어져 있다. 인재들은 떠나가고 기금 운용의 자율성도 보장되지 않기 때문에 국민들의 노후자금을 책임진다는 자긍심마저 사라진 상태다. 올해 조직을 떠난 한 운용역은 “기금운용본부장은 ‘자본시장의 대통령’으로 불릴 만큼 영향력이 크지만 정작 투자 결정 과정은 복지부동하는 공직사회를 닮았다”며 “실무자들의 방패막이가 돼 줘야 할 이사장 등 최고경영진은 정권의 입맛에 따라 교체되기 일쑤”라고 푸념했다.
‘금융의 외딴섬’이 돼 버린 국민연금으로선 이런 해외 연기금의 모습이 남 얘기일 뿐이다. 최근 업계에선 ‘국민연금 패싱’이라는 말이 공공연히 나온다. 해외 투자처와의 접촉이 줄면서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국민연금의 존재감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는 뜻이다. 정부가 기금운용본부의 공전(空轉)을 계속 방치한다면 국민의 노후자금 고갈은 더 빨라질 수밖에 없다. 기금 수익률이 1%포인트만 떨어져도 6조 원이 사라진다. 매달 연금보험료를 믿고 맡기는 2176만 명의 가입자가 지켜보고 있다.
박성민 기자 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