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셀러 저자 세일러 경제학상 엉뚱하고 비이성적 인간심리 주목… 변화 유도위한 행동경제학 개척
스웨덴 왕립과학원 노벨상위원회는 9일(현지 시간) “세일러 교수는 행동경제학의 개척자”라며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학문으로서 논란이 많고 주변부에 머물렀던 행동경제학의 위상을 당당한 주류 경제학으로 발전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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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의 경제학 이론은 사람들이 항상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다고 보지만 세일러 교수는 정작 실상은 이와 다르다고 봤다. 주변 환경에 대한 잘못된 해석이나 개인적 편견으로 엉뚱하고 비합리적인 판단을 자주 내린다는 것이다.
그가 개발한 ‘심리 회계(mental accounting)’ 이론은 그 대표적인 사례다. 같은 돈이라도 사람의 마음이 이를 다르게 분류한다는 것이다. 갑자기 생긴 돈을 ‘공돈’으로 분류해 쉽게 써버린다는 설명은 로또 당첨자 상당수가 파산하는 현상도 해석해 냈다.
▼ 소변기 파리그림-연트럴파크 베개모형… 지구촌 변화 이끈 넛지효과 ▼
변기에 파리를 그려 넣기만 해도 변기 밖으로 튀는 소변의 양이 80% 줄어든다(왼쪽 사진). 넛지 효과는 횡단보도 앞 인도에 노란 공간을 만들어 어린이 교통사고를 줄이는 ‘옐로카펫’ 등 실생활에서 다양하게 활용된다. 네이버 블로그 캡처·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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넛지는 2009년 한국에서 번역본이 출간되자마자 단숨에 인기를 끈 뒤 올 8월까지 124쇄가 발행된 베스트셀러다. 출간된 해 이명박 전 대통령이 여름 휴가지에서 읽은 뒤 청와대 참모들에게 선물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넛지(Nudge)는 ‘팔꿈치로 슬쩍 찌르다’는 의미이지만 세일러 교수는 이를 ‘타인의 선택을 유도하는 부드러운 개입’으로 새로 정의했다. 강요보다는 은근한 개입이 더 큰 행동의 변화를 이끌 수 있다는 것이다.
가령 사무실을 수평적으로 만드는 것만으로 직원 간 소통이 늘고 진열 방식을 바꾸는 것만으로 특정 상품의 판매를 늘릴 수 있다고 세일러 교수는 설명했다. 넛지를 활용한 캠페인은 이미 우리 생활 깊숙한 곳까지 들어와 있다. 파리 그림이 그려진 암스테르담 공항의 소변기가 대표적인 사례다. 그는 “화장실을 깨끗하게 사용하라는 말이나 파리를 겨냥하라는 문구가 없어도 (밖으로 새어나가는 소변을 줄이는) 원하는 결과를 얻어냈다”고 설명했다.
국내에서도 ‘넛지 효과’를 노린 캠페인이 늘고 있다. 고성방가에 시달리던 서울 마포구 연남동 주택가에는 근처 공원(연트럴파크)에 베개 모형을 설치해 야간 소음을 줄였다. 최근 각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안전한 공간에서 어린이가 보행신호를 기다리게 하고 운전자도 어린이를 잘 알아볼 수 있게 ‘옐로카펫’을 설치하고 있다. 길거리에 환경미화원 스티커를 붙여 쓰레기 무단 투기를 줄이기도 한다.
세일러 교수는 2009년 서울에서 열린 ‘제2회 기업가정신 주간 국제 콘퍼런스’에 참석해 “정부가 강력하게 개입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이 넛지의 원칙”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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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일러 교수는 그동안 여러 차례 노벨 경제학상 후보로 거론됐지만 번번이 수상에 실패했다. 9일 수상자 발표 직후 가진 공동 영상 인터뷰에서 “(수상 소식을 듣고) 기뻤다. 이제 더 이상 동료 교수 파마와 골프 치면서 ‘파마 교수님’이라고 부르지 않아도 될 것 같다”고 농담했다. 그가 언급한 유진 파마 교수는 2013년 로버트 실러 교수와 함께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다.
12억 원이 넘는 노벨상 상금을 어떻게 쓸 것이냐는 질문에는 “가장 비이성적인 방법으로 쓸 것”이라고 농담하기도 했다. 그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 위기 당시 미국 월가의 탐욕을 그린 영화 ‘빅쇼트’에 해설자로 출연해 “한 영역에서 성공한 사람은 다른 곳에서도 성공할 것으로 믿고 곧장 나아간다”고 말하기도 했다.
세종=최혜령 herstory@donga.com / 송충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