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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난 名문장]한 바구니에 계란을 모두 담지 마라

입력 | 2017-09-30 03:00:00


하지현 건국대 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그 어느 때보다 효율이나 성과를 바라는 직장에서 ‘나다움’을 추구하기란 몹시 어려운 일이겠지요. 그렇다면 이런 중압감에 시달리지 않기 위한 처방전은 없을까요? 있습니다. 그 처방은 바로 하나의 영역에 자신을 100퍼센트 맡기지 않겠다는 태도입니다.

― 강상중, ‘나를 지키며 일하는 법’》
 

매미는 8년을 고치에 머물다 여름 한 달 남짓 울고 사라진다. 사회가 고도화되고, 경쟁이 심해지면서 준비할 것은 많아지고, 자기 일로 한몫을 해내는 시간은 갈수록 짧아지고 있다. 상징적인 측면에서 심리적 매미가 늘어나는 셈이다. 매미도 되지 못할까 불안이 상설화된 세상이 되었는데, 그 불안을 통제하기 위해 하던 일에 더 몰두한다. 내 옆의 사람보다 한발 더 앞서가면 안전해질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더욱이 한 번 실패하면 경쟁에서 탈락하고 다시 출발선에 서지 못한다고 여겨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이고 중압감이 장난 아니다.

더 몰두해야 한다고 자신을 다그치고 자책하며 모든 감정을 쏟아붓다 보니 그 안에서 불가피하게 경험하는 일상적 실패는 더 아프게 느껴져 치명상으로 인식되기도 한다. 이건 특수한 재능 있는 자리의 사람만을 위한 이야기가 아니다. 현대사회가 개인에게 ‘1인분’이 될 때 필요하다고 요구하는 전문성과 자격은 모두 이런 노력을 필요로 한다. 문제는 앞으로 10년은 도대체 어떻게 흘러갈지 예측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오래 노력해 얻어낸 능력이 어느 날 갑자기 쓸모없는 것이라는 판정을 받을 위험이 상존한다. 그러니 지금 계속 이런 방식으로 나아가도 될지 불안은 더해진다. 현대인의 상설 딜레마다.

나도 언제나 고민해 온 고민이기도 하다. 의과대학, 전공의 수련, 거기다 박사 학위까지 오랜 시간 공부를 했다. 마치 도박을 하듯이 이 길로만 깊이 파들어 갔다. 시간이 지날수록 예민해지고 주변의 동료들이 경쟁자로만 보였다. 반칙을 해서 넘어뜨리고서라도 앞서가 먼저 성공이라는 깃발을 잡아야 끝나는 게임으로만 보였다. 별 해결책이 보이지 않았다. 지나친 욕망을 내려놓는 것, 속도를 줄이는 것 같은 뻔한 이야기 말고는 없을까?

이런 고민에 길을 열어준 문구가 바로 이 문장이다. 지금까지 해 온 하나의 영역에만 내 모든 역량을 100% 투자하지 마라. 시대가 불확실하니 일과 노력의 영역도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듯 여러 개로 나누는 것이 개인을 지키는 길이라는 것이다. 이제는 나의 다중적 측면을 인정하고, 여러 측면에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야 한다. 그래야 실망도 덜 할 수 있고, 실패에 대한 보상도 다른 영역의 성공을 통해 받을 수 있다. 난관을 뚫고 일점돌파를 하는 전력질주보다 삶의 밸런싱과 포트폴리오를 추구하는 것이 불확실성이 커지는 세상에서 성공을 떠나 일단 끝까지 생존할 가능성을 높여주는 전략이 될 것이라 믿는다.

하지현 건국대 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