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송평인 칼럼]김명수 후보자, 타협할 만한 次善이다

입력 | 2017-09-20 03:00:00

가까이서 본 대법원장 후보자… 반듯한 풍모 인상 깊어
판사는 판결로 말하지만 인성을 무시할 수 없어
그를 부결시킨다고 나은 후보 얻는단 보장 없다




송평인 논설위원

몇 해 전이다. 당시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였던 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자와 2년 가까이 대한변호사협회의 한 위원회에서 같이 활동하면서 그를 근접 거리에서 지켜볼 기회가 있었다. 김 후보자의 말은 부드럽고 태도는 늘 겸손했다. 그는 내가 직접 접해본 법관 중에서 깊은 인상을 심어 준 법관 가운데 한 명이다.

김 후보자가 우리법연구회 회장이었다는 사실은 그가 대법원장 후보자가 되고 나서야 알았다. 위원회 회의가 끝나면 위원들은 같이 저녁식사를 한다. 김 후보자는 바쁜 중에서도 가능한 한 참석하려고 노력했다. 저녁식사 자리에 정치도 심심치 않게 화제에 올랐지만 김 후보자에게서 이념적으로 특별히 편향적이라고 할 만한 발언을 들은 기억은 없다.

김 후보자에게는 남달리 반듯한 풍모가 있다. 몇 차례 얘기를 나눈 후에 그 풍모의 정체가 종교적 독실성과 무관치 않다고 여기게 됐다. 그는 법원 내 불자 모임인 서초반야회를 창립하고 그 회장을 지냈다. 서울대 법대 재학 시절 법불회에서부터 열심히 활동했다고 한다. 난 다른 종교를 갖고 있으니 불교에 편향된 사람이라는 의심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김 후보자는 위원회 활동을 하기 전에 몰랐고 그 후로도 연락한 적은 없다. 그러다 김 후보자가 대법원장 후보자로 지명됐을 때 예상치 못한 괜찮은 카드라고 생각했다. 대법원장 후보자 지명을 고사한 박시환 전수안 두 전 대법관이 그를 가리켜 “우리보다 나은 사람”이라고 했을 때 그들이 어떤 느낌으로 한 말인지 대강 짐작할 수 있었다.

언론과 정치권에서 나오는 김 후보자에 대한 평가는 그를 지지하든 반대하든 다소 피상적이라는 느낌을 받는다. 판사는 판결로 말한다는 말이 있다. 튀는 판사들이 아니면 외부에서 어느 판사의 개인적 면모를 알기 힘들다.

어찌 보면 소소하다고 할 수 있는 개인적 경험을 늘어놓은 것은 2005년 존 로버츠 미국 연방대법원장이 임명될 때 국제부 기자로서 관심 있게 지켜본 미국 언론의 보도가 떠올라서다. 미국 언론의 연방대법원장 검증은 대통령 검증보다 어떤 면에서 더 엄격하다. 로버츠가 자랄 때 친구와 싸움을 했는데 그 이유가 무엇이었는지까지 파고들었다. 마치 로버츠의 생애 전체에 대한 생활기록부를 펼쳐 놓은 느낌이었다. 당시 50세인 로버츠의 판사 경력이 연방항소법원 2년밖에 없어서 검증할 만한 판결이 부족했고 그래서 더 인성을 파고들었는지 모른다.

나는 김 후보자의 성품은 알고 있었지만 그가 어떤 사안에 어떤 판결을 했는지는 잘 알지 못했기 때문에 자신 있게 대법원장감이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그에 대한 보도를 유심히 지켜봤다. 그에게서 인사청문 대상자에게 흔히 드러나는 재산 병역 표절 등의 도덕적 결함이 발견되지 않았다. 무엇보다 상식에 크게 어긋난 편향된 판결이 없었다. 전교조 법외노조 효력정지 가처분 인용이 논란이 되고 있지만 그 정도로 자격 시비를 하는 것은 지나치다. 그가 대법관을 했다면 민감한 사안들에 대해 의견을 피력했을 것이고 그로 인해 논란에 휩싸였을 수도 있을 테지만 대법관을 거치지 않은 점이 여기서는 운 좋게 작용했다.

다만 그의 개혁 성향이 현실과 동떨어져 공상(空想)적으로 흐르지 않을까 하는 우려는 남아 있다. 그가 춘천지법원장 시절 했다는 수평적 판사 조직 실험이 그렇다. 미국의 판사 조직이 수평적인 것은 주법원이든 연방법원이든 판사를 40대 후반이 돼야 시작하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로 치면 대개 고법 부장판사가 되기 직전의 나이다. 우리나라도 모든 판사가 고법 부장판사 정도의 경륜을 갖고 있다면 수평적 판사 조직을 만들지 못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나이가 사십이 돼도 ‘재판은 정치’라는 헛소리를 하는 판사가 있는 게 실상이다.

법원에 그 말고도 대법원장을 할 만한 사람은 충분히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진보정권이 대법원장에 대한 지명권을 갖고 있는 상황에서 그나마 보수가 합의해줄 수 있는 드문 인물임에 틀림없다. 보수정권이 대법원장 지명권을 갖고 있더라도 진보가 어느 정도 동의해주는 인물을 뽑을 수밖에 없다. 사법부의 수장은 그런 자리다. 국회에서 그의 임명동의가 부결될 경우 그보다 못한 인물이 지명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솔직히 없지 않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