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년만에 돌아온 마하티르 前총리 “야당대표로 내년 총선 승리 앞장”
장쩌민(江澤民·91) 전 중국 국가주석은 다음 달 18일 공산당 제19차 전국대표대회(당대회) 개막을 앞두고 자기 계파 인물들을 최고지도부인 정치국 상무위원에 앉히기 위해 막후 영향력을 총동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시아 주요국에서 한 시대를 풍미했던 90대 주요 원로 정객들이 여전히 존재감을 과시하며 활동하고 있다. 은퇴 시기를 훨씬 넘긴 노(老)정객들이 다시 현실 정치에 뛰어드는 이유는 제각각이다.
중국의 장 전 주석은 톈안먼(天安門) 사태 직후인 1989년 6월 덩샤오핑(鄧小平)에 의해 총서기에 전격 발탁된 후 2002년까지 총서기를 지냈다. 그는 후진타오(胡錦濤) 주석이 집권한 후에도 중앙군사위 주석을 3년가량 더 맡았고, 자신의 측근들을 정치국 상무위원과 군사위 부주석에 심어 뒀다. 그는 20년 이상 영향력을 발휘하며 주요 정치 계파 중 하나인 ‘상하이방(上海幇)’을 이끌고 있다.
하지만 시진핑(習近平) 정부 5년간 진행된 반부패 사정(司正)으로 저우융캉(周永康) 전 중앙정법위 서기 등 수족들이 잘려 나갔다. 이번 당대회에서 한정(韓正) 상하이 서기 한 명이 남으면 다행인 처지가 됐다. 그럼에도 여전히 ‘상하이방 맹주’로 시 주석의 1인 지배 체제 강화를 견제하는 데 막후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건강이상설이 나오자 5월 말 자신의 장남 장몐헝(江綿恒)이 총장으로 있는 상하이과기대를 공개리에 방문해 건재를 과시하기도 했다. 올해 8월에 열린 중국 전현직 지도자들의 비밀 회동인 베이다이허(北戴河) 회의에서도 시 주석 권력 확대 견제에 역할을 했다는 후문이다.
대만의 리덩후이(李登輝·94) 전 총통은 장제스(蔣介石) 장징궈(蔣經國) 부자의 장기 집권에 이어 1988년 대만에서 태어난 본성인(本省人)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총통이 됐다. 총통 직선제 도입 등 민주화의 초석을 닦았으며 대만독립 노선을 분명히 했다. 그의 노선에 반대했던 중국은 1996년 총통 선거 당시 대만해협에 미사일을 발사하는 등 무력시위를 벌였다. 그의 재선을 막기 위해서였지만 결과는 재선 성공이었다.
2000년 퇴임 이후 조용히 지내던 그는 최근 보다 자주적인 대만의 위상을 세우기 위한 헌법 개정을 주창하는 등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리덩후이 기금회’ 주도로 ‘헌법 지금 바꾸자’라는 사이트도 열었다.
김종필 전 총리(91)는 건강 악화로 병원에 입원하거나 휠체어 생활을 하고 있다. 하지만 대선 예비 후보 여야 정치인의 예방을 받아 ‘정치 9단’으로서 훈수를 하며 ‘3김 시대’의 역사가 끝나지 않았음을 보여주고 있다. 서양의 90대 정치 지도자로는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93)이 대표적으로 건재한 사례로 꼽힌다.
구자룡 기자 bonh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