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퇴직 1년 앞두고 현장출동 앞장섰던 베테랑 국민 지키는 몸 만든다고 술-담배 안하던 새내기
동료들과 함께 소방훈련을 받던 이호현 소방사(가운데).
아버지가 아들을 바라보며 허망하게 말했다. 자신보다 아버지 걱정만 하던 아들은 소방관 정복을 입은 채 영정 속에 있었다. 아들의 눈빛은 여전히 걱정하지 말라는 듯 아버지를 향했다. 17일 강원 강릉의료원 장례식장에서 만난 경포119안전센터 이호현 소방사(27)의 아버지 이광수 씨(55)는 “전날도 근무 나가며 ‘식사 챙겨 드시고 걱정 마시라’고 했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이 소방사는 이날 오전 4시 29분경 강릉시 경포 석란정(石蘭亭) 화재 현장에서 무너진 건물 더미에 깔려 숨졌다. 이 소방사의 ‘멘토’였던 이영욱 소방위(59)도 함께 희생됐다. 30년 경력의 베테랑인 이 소방위는 내년 말 정년퇴직을 앞두고 있었다.
이 소방사 빈소에는 상복을 입은 여자 친구가 있었다. 두 사람은 내년에 결혼하기로 약속했다. 두 사람은 결혼을 앞두고 계절별로 여러 사진을 찍어 놓기로 했다. 그러나 올여름 이 소방사가 정복을 입고 찍은 사진이 처음이자 마지막 사진이 됐다.
17일 강원 강릉시 ‘석란정’ 화재 현장에서 숨진 이영욱 소방위와 이호현 소방사가 생전에 함께 소방장비를 점검하는 모습. 오른쪽 앉아 있는 사람이 이 소방위, 주황색 근무복을 입은 사람이 이 소방사다.
그의 멘토인 이 소방위는 ‘잉꼬부부’로 소문났다. 재치가 넘쳐 늘 가족을 즐겁게 해주던 남편이자 아버지였다. 그러면서도 남에게 싫은 소리, 화 한 번 내지 못하는 착한 사람이었다. 갑작스럽게 닥친 비보에 이 소방위의 아내는 이날 남들의 부축을 받지 않고는 걸을 수도 없었다. 이 소방위의 형 이영환 씨(71)는 “금실이 너무 좋은 부부였다”면서 눈시울을 붉혔다.
2000년대 초 어머니(91)가 치매 증상을 보이기 시작하자 이 소방위는 누구보다 가슴 아파했다. 6남 2녀 중 일곱째인 이 소방위는 쉬는 날이면 빠짐없이 요양원을 찾아 노모의 말동무 역할을 했다. 그의 소원은 매일같이 노모의 얼굴을 보는 것이었다. 그는 “퇴직하면 요양원에 있는 어머니를 매일 뵙는 게 소원”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이 소방사는 베테랑 이 소방위를 아버지처럼 따랐다. 이 소방위 역시 현장에 출동하면 이 소방사를 아들처럼 여기며 가르쳤다. 최상규 경포119안전센터장은 “한 팀을 이뤄 화마와 싸워 온 동료를 잃게 돼 너무 안타깝다”며 “강한 리더십으로 팀을 이끌던 이 소방위와 팀 막내로 센터 분위기를 밝게 만들던 이 소방사가 순직한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두 소방관에게는 1계급 특진과 옥조근정훈장이 추서된다. 영결식은 19일 오전 10시 강릉시청 대강당에서 강원도청장(葬)으로 거행된다. 영결식 후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된다.
강릉=황성호 기자 hsh0330@donga.com
강릉=최지선 기자aurink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