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희 논설위원
핵전쟁 가능성보다 리스크 커
최악의 경우 원전은 녹아내릴지언정(멜트다운) 폭발하지 않는다. 발전용 연료의 우라늄 농도가 0.7∼5%로 낮기 때문이다. 반면 핵무기에 사용되는 우라늄이나 플루토늄은 95% 이상 농축된 것이다. 10kt급 핵무기가 서울 상공에서 폭발하면 최대 23만5000명이 사망한다는 게 미국 랜드연구소의 분석이다. 이번에 북한이 실험한 핵무기가 정부가 최소한으로 추정한 것만으로도 50kt급이라니 그 파괴력은 상상조차 안 된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북핵보다 원전에 공포심을 갖는 것 같다.
한반도에서 핵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은 크지는 않지만 없지도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아니 현 시점에서 한반도는 핵전쟁 가능성이 가장 큰 지역이다. 국제정세와 원전관리 상태로 볼 때 북한이 핵을 쏠 가능성이 원전에서 중대사고가 날 가능성보다 훨씬 크다고 나는 본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고 해도, 즉 북이 핵을 사용할 확률이 원전사고 가능성보다 더 낮다 해도 우리는 북핵에 우선순위를 두어야 한다. 리스크가 더 크기 때문이다.
원전 재가동 日, 미래 택했다
북핵 위협이 가시화한 상황에서도 정부의 탈원전 기조에는 흔들림이 없다. 신고리 5, 6호기 건설 중단과 관련해 공론조사가 진행 중이지만 엄정 중립을 지켜야 할 정부는 대놓고 탈원전 홍보사이트(www.etrans.go.kr)를 열었다. 한국갤럽과 리얼미터 조사에서 북핵 실험 이후 독자 핵개발이든 전술핵 배치 등 핵무장이 필요하다는 국민여론이 절반을 넘어섰는데 정부는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도 못 하겠다고 한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전략에 따라 우리가 핵무장을 하게 될 경우 원전도 못 하겠다는 나라에 전술핵이 들어온다면 앞뒤가 맞는가. 우리가 독자 핵개발을 하려고 할 때 원천기술이 남아 있기라도 할까.
후쿠시마 사고로 54기의 원전 가동을 중단했던 일본이 최근 원전 2기의 재가동을 승인했다. 우리랑 비교할 수 없는 내상을 입었으면서도 일본은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미래를 선택했다. 우리도 이제 북핵이 두려운지, 원전이 두려운지를 냉정하게 바라볼 때가 되었다. 원전과 핵무기의 작동 메커니즘은 같다고 한다. 우리도 원자력에 대해 일관성을 가져야 한다.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