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형권 경제부 차장
나머지 국민(99.53%)에서 부자 국민(0.47%)이 되는 길은 무엇일까. 청와대 재산공개 대상자 중 최고 자산가(93억1962만 원)인 장하성 대통령정책실장(64)도 비슷한 질문을 받았다. “내가 열심히 일하는 만큼 내가 벌어 모은 돈도 열심히 관리한다는 게 재테크 원칙 1호다.”(청와대 페이스북에서) 장 실장 같은 60대 이상 부자의 80.9%가 ‘(열심히 일해서) 스스로 모은 자금으로 생애 최초의 부동산을 구입했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이런 자수성가형 부자는 50대 70.3%, 40대 이하 62.8%로 줄었다. 그만큼 ‘상속 또는 증여 부자’ 비율이 늘었다. 60대 이상 17.6%, 50대 29.7%, 40대 이하 35.8%. “제 장래희망은 재벌 2세인데요. 아빠가 재벌 되려는 노력을 안 해서 너무 속상해요” 이런 씁쓸한 유머가 회자되는 이유다.
“돈엔 무게가 있다.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돈은 가볍지만, 내가 땀 흘려 번 돈은 무겁다. 무거운 돈을 1000만 원 모을 수 있다면, 1억 원도 만들 수 있다.” ‘가장 성공한 재미 사업가 10인’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신선도시락 전문업체 ‘스노우폭스’ 김승호 회장(53)의 재테크 비법이다. 역시 성공한 재미 사업가인 코스메틱 제조업체 인코코(Incoco)의 박화영 회장(59)은 “어떻게 부자가 됐느냐”는 질문을 받으면 늘 쥐똥 얘기로 답한다. “유학생 시절 고급식당 아르바이트 자리를 어렵게 얻었다. 고약한 매니저가 구석구석 떨어져 있는 작은 쥐똥을 청소하라고 했다. 쥐똥을 하나하나 손으로 주우면서 생각했다. 앞으로 못할 일이 무엇이냐.” 그렇게 번 돈이니 얼마나 무거웠을까.
“공직 후보자로서의 높은 도덕성을 기대하는 국민의 눈높이에 맞지 않았다.” 주식 투자로 큰 이익을 거둔 과정에 대한 각종 의혹이 제기되면서 결국 낙마한 이유정 전 헌법재판관 후보자(49)의 사퇴 변이다. 그는 “불법은 없었다”고 했다. 청와대도 ‘진보적이고 양심적인 인권변호사의 돈은 그만큼 착하게 모아졌을 것’이라고 믿었을 듯싶다. 돈 주인의 색깔(이념적 성향)만 보고 그 돈의 무게(어떻게 벌었는가)는 진지하게 재어 보지 않았을지 모른다.
장하성 실장은 “대부분 국민이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버는데 노동이 신성한 만큼 그 노동으로 벌어서 아껴서 모은 돈도 신성하다”고 말했다. 기자를 포함한 나머지 국민(99.53%)은 부자는 아니지만, 그런 신성한 돈에 대해 시비 걸 만큼 수준이 낮지도 않고, 도덕적 눈높이가 지나치게 높지도 않다.
부형권 경제부 차장 bookum9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