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영 채널A 심의실장
한국의 부부는 로맨스와 거리가 멀다. 지난해 라이나생명과 강동우 성의학연구소가 발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한국 부부의 36.1%는 성관계가 월 1회 이하인 섹스리스 커플이다. 국가별 통계는 없지만 이 정도면 일본과 함께 ‘침실에서 불꽃이 튀지 않는 나라’ 1, 2위를 다투는 수준이라고 한다. 일본가족계획협회가 올해 밸런타인데이에 발표한 일본 섹스리스 커플은 47.2%였다.
잠자리를 식히는 냉매제로는 자녀 문제에 올인 하는 가정 문화와 함께 맞벌이 부부의 증가가 지목된다. 하지만 옛날 동서독 주부들의 성생활을 비교 연구한 결과를 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 가난한 동독의 워킹맘들이 온갖 가전제품을 들여놓고 사는 서독의 전업맘보다 오르가슴을 두 배 많이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동유럽 전문가인 크리스틴 고드시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교수는 러시아혁명 100주년을 기념하는 뉴욕타임스 칼럼에서 “사회주의 여성들이 더 나은 성생활을 누렸다”고 소개했다. 엄혹한 공산 정권하에서 살았던 여성들은 “고단했지만 내 삶은 로맨스로 가득 찼었다”고 추억한 반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가는 그 딸들은 “퇴근 후엔 남편과 좀비처럼 앉아 TV만 본다. 아이 가질 엄두를 못 낸다”고 하소연한다는 것이다.
광고 로드중
저출산 문제를 겪고 있는 자본주의 국가들은 뒤늦게 성 격차와의 관계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못사는 나라들의 경우 성 평등 수준이 낮을수록 출산율이 높지만, 선진국에서는 성 평등 수준이 높을수록, 다시 말해 여성을 차별하지 않는 나라에서 출산율도 높게 나타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것이 ‘페미니스트 패러독스’다. 세계경제포럼이 지난해 발표한 성 격차 지수 나라별 순위에서 116위와 111위로 하위권을 차지한 한국과 일본이 대표적인 섹스리스, 저출산 국가인 점도 이 이론을 뒷받침한다.
하트시그널을 본 워킹맘은 “죽도록 사랑한 사람이 결혼 후 맞벌이, 독박 육아 살림에 죽일 놈이 돼가는 건 우짤까요”라고 한탄했다. 집 안에서 부부간 불평등이 해소되지 않는 한, 집 밖에서 경제 참여와 정치적 권한의 남녀 간 불평등이 바로잡히지 않는 한 설레는 로맨스도 출산도 없다. 부부의 내밀한 잠자리 사정이 정부와 무관하지 않은 이유다. 여성을 만족시켜야 유능한 정부다.
이진영 채널A 심의실장 eco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