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차 핵실험·ICBM 성공으로 근본적으로 달라진 것은 미국의 對北선제공격에 대한 한국의 거부권 상실 ICBM 배치 않는 조건으로 미, 북핵 용인할 수도 있다 “남북대화로 비핵화” 접고 한미공조로 군사적 대비를
천영우 객원논설위원 한반도미래포럼 이사장
북한이 이 시점에 이런 대담한 실험을 감행한 이유는 간단하다. 핵·미사일 고도화 목표를 향해 계획된 수순과 시간표에 따라 움직이는 과정에서 이를 저지할 나라가 없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핵심 이해당사국들이 김정은에게 꽃놀이패를 만들어 주었고 핵·미사일 실험을 자제할 이유를 무력하게 만들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최대의 압박을 통한 대화’ 전략은 실제로는 ‘불충분한 압박과 성급하고 과도한 대화 열의’로 전락하면서 군사적 위협이 신뢰성을 잃고 김정은에게 상황 주도권을 넘기게 됐다. 지난달 5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제재 결의안이 채택되자마자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이 대화 조건으로 핵·미사일 실험 중단을 제시한 데 이어 13일엔 국무·국방장관 공동 명의 월스트리트저널 기고문에서 이를 재확인한 것은 북한의 비핵화 약속을 대화 조건으로 유지해온 기존 미국 입장의 전면적 후퇴를 의미한다.
북한의 ICBM 성공과 6차 핵실험으로 근본적으로 달라지는 것은 미국의 선제공격에 대한 한국의 거부권 상실이다. 북한이 수소폭탄으로 미국 본토를 공격할 능력을 갖추면 미국이 선제공격을 하기 전에 우리와 형식적인 상의는 하더라도 군사적 대비를 위한 일방적 통보가 될 가능성이 높다.
또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이 고도화할수록 이를 되돌리기는 그만큼 어려워지고 비핵화 대신 핵 동결로 딜(deal)이 이루어질 위험성도 커진다. 동결이란 미국을 공격할 ICBM을 배치하지 않는 조건으로 북한이 한국 일본 괌까지 공격할 핵·미사일을 계속 보유하도록 허용하는 것인데 동결 상태가 고착화하면 북한의 핵 보유를 용인하고 사실상 정당화시켜 주는 결과를 초래한다. 한국과 일본으로서는 미국이 자국 이익을 위해 동맹을 배신하는 행위이고 미국 우선주의가 초래할 안보 재앙이다.
비핵화 목표가 더 멀어졌지만 불가능하다고 단정할 필요는 없다. 북한에 핵보다 중요한 것은 생존뿐이므로 체제 존속을 위협할 수준의 경제봉쇄를 단행할 수 있다면 북한이 전략적 셈법을 바꿀 가능성은 남아 있다. 북한과 거래하는 기업에 대한 세컨더리 보이콧과 석유 금수만으로는 어림도 없다. 미국이 중국에 대해 갖고 있는 모든 경제적 압박 수단과 대만 카드까지 동원할 의지가 있는지가 관건이다. 경제봉쇄가 신뢰성 있는 군사적 옵션으로 뒷받침돼야 평화적 해결의 가능성은 높아진다.
북한의 운명을 좌우할 비핵화를 남북 대화를 통해 풀어보겠다는 초현실적이고 순진한 발상은 버리고 우리 정부도 대북 압박수위를 높이는 데 힘을 보태야 한다. 평화지상주의와 전쟁공포증은 패배주의만 조장하고 코리아 패싱을 자초한다. 우리의 발언권은 북한에 가장 소중한 것을 주거나 박탈할 능력과 이를 사용할 의지, 그리고 이를 가진 나라를 움직일 외교력에 의해 결정된다. 한미 공조가 중요한 이유다.
천영우 객원논설위원 한반도미래포럼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