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너 루스벨트 여사
미국에서 유명한 여성 정치인이자 전 영부인(ex-first lady)인 힐러리 클린턴이 한 말입니다. 워낙 유명한 말로 ‘어번 딕셔너리’(Urban Dictionary·도시의 사전)에도 실려 있죠. 힐러리는 여성 리더십에 대한 질문을 하도 많이 받아 지겨울 텐데 그럴 때마다 이 말로 대화를 시작합니다. 여기서 ‘두꺼운 피부’는 긍정적 의미의 ‘뻔뻔함’을 의미합니다. 주변의 비난을 받아도 자신의 원칙에 따라, 자신이 믿는 바를 밀고 나가는 코뿔소 같은 추진력을 말합니다. 여성이 부족하기 쉬운 진취성, 도전정신을 기르라는 의미가 되겠죠.
‘코뿔소 발언’을 처음 한 건 힐러리가 아닙니다. 지금부터 80여 년 전 미국 32대 대통령인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부인 엘리너 루스벨트(Eleanor Roosevelt) 여사가 먼저 비슷한 의미의 말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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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너 여사는 미국 영부인 중 가장 유명한 인물이며 여성 정치계의 대모와 같은 존재입니다. 키 180cm에 기골 장대했던 엘리너 여사는 코뿔소와 이미지도 비슷합니다(물론 긍정적인 의미로 말이죠). 힐러리도 자신의 영웅으로 엘리너 여사를 꼽습니다.
그러나 미국은 영부인이 살기 쉽지 않은 나라입니다. 너무 앞에 나서서 활동하면 ‘설쳐 댄다’는 비난을 받죠. 뒤로 물러나면 ‘자리에 있는 거냐, 없는 거냐’고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립니다. 자신의 위치를 잃지 않으면서도 남편의 뒷자리에 설 줄 아는 영부인상을 좋아하는데요. 미셀 오바마 여사,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의 부인인 로라 여사, 로라 여사의 시어머니이자 조지 H W 부시 전 대통령의 부인인 바버라 여사 등을 미국인들은 좋아합니다.
이런 기준에서 본다면 엘리너 여사는 ‘너무 나서는’ 영부인으로 분류되지만 워낙 훌륭한 일을 많이 해 오랫동안 미국인의 존경을 받는 영부인 1위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미국 소수인종 권리 투쟁에 직접 참여하기도 하고, 군인들의 복지에도 신경 썼거든요. 남편인 프랭클린 대통령이 소아마비 때문에 휠체어에 앉아 생활했기에 대신 전국 곳곳을 누비며 국민들의 의견을 듣는 것은 엘리너 여사의 몫이었습니다.
미국 유일의 4선(選) 대통령인 프랭클린 대통령은 정치적으로 업적이 많지만 사생활은 그리 존경 받지 못했습니다. 자신의 비서와 스캔들이 나 딴살림을 차리기도 했는데 엘리너 여사는 국민들로부터 ‘바람난 남편이 돌아오기를 묵묵히 기다린 아내’라는 동정표를 많이 받았죠. ‘엘리너 여사가 이혼했으면 미국의 역사가 달라졌을 것’이라는 얘기가 있을 정도로 많은 일을 해낸 ‘퍼스트 레이디 중의 퍼스트 레이디’로 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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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러리 클린턴
정미경 기자micke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