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해 논설위원
노무현 실패는 토론 때문?
대통령 업무지시 1호 일자리위원회 설치부터 6호인 4대강 보(洑) 상시 개방에 이르기까지 취임 100일은 숨 가쁜 대통령 지시의 연속이었다. 높은 여론조사 지지율에 힘 받은 대통령의 독주에 야당은 보이지도 않았다. 문 대통령의 속도전은 토론을 중시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실패가 반면교사가 됐다고 청와대 사람들은 말한다. 숱한 위원회를 만들어 격렬하게 토론했지만 논란만 증폭시키며 반대편 공격을 불러왔을 뿐 정작 성사된 것은 많지 않은 노무현의 전철을 밟지 않겠다는 것이다. 토론과 민주적 절차를 중시했던 노무현과 불도저처럼 밀어붙이는 문재인의 스타일은 확연히 다르다. “원전 문제가 국회로 가면 정쟁만 요란할 것”이라는 전병헌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 말에도 문 대통령의 속내가 엿보인다.
2004년 9월 노 대통령 임기 이듬해 정기국회 때 4대 쟁점법안을 놓고 여야는 극한 대치를 벌였다. 당시를 돌이켜보면 취임 1년을 맞는 내년 지방선거 전까지 못하는 일은 임기 중에 물 건너갈 것이라고 문 대통령은 생각할 만하다. 과거사와 친일 진상규명, 사립학교개혁 법안은 통과시켰지만 국가보안법 폐지는 뜻을 이루지 못했다. 더욱이 과거 청산에 매달리느라 정작 국민이 먹고사는 문제는 내팽개쳤다는 후폭풍이 거세면서 열린우리당 지지율은 곤두박질쳤다.
대선후보들 손 맞잡아야
내일부터 시작되는 정기국회는 문 대통령에겐 새로운 시험대다. 100대 국정과제를 이행하려면 국회에서 647건의 법률 제정 및 개정이 필요하다. 반대 세력까지도 끌어안는 포용의 정치를 하지 않으면 무엇 하나 이루기가 쉽지 않다. 법인세 인상과 선심성 복지정책을 담은 내년도 세제개편안과 예산안, 의료보장을 확대하는 ‘문재인 케어’, 심지어 적폐 청산도 야당 협조 없이는 어렵다. 노무현 청와대에서 정무수석을 한 유인태 전 의원은 “문 대통령이 지지율만 믿고 밀어붙이려다가는 장벽에 부딪힐 것”이라며 “막후에서도 야당을 설득하는 진정성 있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했다. 지금이라도 지난 대선에서 경쟁한 야당 정치인들부터 만나 “더 나은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 당을 떠나 도와 달라”고 간곡하게 호소하면 어떨까. 협치는 맨입으로 되는 게 아니다.
최영해 논설위원 yhchoi6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