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양환 문화부 기자
아, 이렇게 맑고 뻔할 수가. 물론 예상은 했다. 종교 담당이니 취재원이라면 당연히 물어보리라. 신부와 목사, 스님, 이맘…, 모두가 그랬다. 종교란 영역을 표시하는 ‘시그니처(signature·서명)’ 같은 느낌? 괜히 쭈뼛거리다 먼저 털어놓은 적도 있다.
답은 한결같다. 표현은 수시로 바뀌지만 “딱히 없습니다.” 선배들에 따르면, 그러다 선교 말씀을 수 시간씩 듣기도 했다는데. 다행히 요즘은 그런 일 없다. 많이들 “차라리 잘됐네. ‘제3자’니 어디 편들거나 그러진 않겠군”이라며 격려한다. 한 목회자도 비슷한 덕담(?)을 하다, 끝자락에 슬쩍 한숨 섞인 혼잣말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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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 보인다니 신나서 총총 물러났지만, 국내 종교계에 신자의 감소는 몇 년 사이 심각한 화두다. 올해 발표된 10년 주기의 통계청 종교인구 조사(2015년 기준)에서 종교 없는 국민이 56.1%로 절반을 넘어섰기 때문이다. 2005년 47.1%에서 9%포인트나 증가한 수치다. 특히 10대(62.0%)와 20대(64.9%) 등 청년층은 당시보다 평균 12%포인트 이상 크게 늘었다.
이러다 보니 최근 성직자에게 듣는 두 번째 시그니처 주제는 위기의식이다. 일종의 자성이랄까. ‘사회와 동떨어져 공감이 부족했다’ ‘뼈를 깎는 변화가 필요하다’ 등등. 어느 간담회에서 만난 학자는 “인간과 종교, 인류와 신앙의 근본적 관계를 재설정해야 한다”는 의견도 피력했다. 그때 알아듣는 척한 거, 이 자리를 빌려 사과드린다.
위안이야 되진 않겠지만, 이는 우리만의 문제는 아닌가 보다. 영국 일간지 인디펜던트에 따르면 잉글랜드는 2014년 이미 무종교인이 48.5%로 종교인(43.8%)을 앞질렀다. 미국 역시 최근 신앙을 버리는 사람들이 가파르게 늘고 있단다. 장기 불황과 사회의 파편화 등 원인을 찾으려는 분위기도 우리랑 엇비슷하다.
정답은 당연히 모르겠다. 분명 한두 가진 아닐 터. 종교계 내부에선 갑론을박이 오고가는 토론회나 모임이 꽤나 잦다. 다만 제3자로서 한 발짝 물러나 보면, 그 치열함이 밖에선 그다지 잘 ‘보이지 않는다’. 괜스레 돌려 말하지 말자. 아무 포털 사이트나 들어가서 요즘 종교 관련 검색어를 찾아보시라. 과세, 선거, 시위…, 그리고 뒤따르는 수식어는 논란 갈등 진통 반발. 속 시끄러운 주제들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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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말 출간됐던 ‘지금, 한국의 종교’(메디치)란 책이 있다. 국내 3대 종교전문가들이 만나 현재의 상황을 진단하고 비판하는 내용이었다. 그 주장에 동의하건 안 하건, 당시 출판사의 홍보 문구는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종교가 세상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종교를 걱정하는 시대.’
어쩌면 현재도 진짜 위기는 아닐지 모른다. 연예계엔 이런 말이 있다. 악플(악성 댓글)이 무플보다 낫다고. 근심이 깊으면 관심이 식는다. 그건 순식간이다.
정양환 문화부 기자 ra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