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성장시대, 강경투쟁의 한계
그러나 노동계가 강경 일변도로 밀어붙이고도 얻어낸 것은 정권교체에 따른 성과연봉제 폐지 말고는 거의 없었다. 지난해 협약임금상승률은 3.3%에 그쳤다.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1.7%) 이후 가장 낮은 인상률이다. ‘소리만 요란한 빈손 파업’이었던 셈이다. 전문가들은 노동계가 저성장 시대에 강경 투쟁이 좋은 근로조건을 보장하지 못하는 ‘파업의 역설’을 인식하고 협력적 노사관계 구축에 나설 때라고 입을 모은다.
○ 안정된 노사관계는 ‘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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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는 ‘허상’에 가깝다는 게 중론이다. 현대·기아차 노조가 이달부터 수시로 부분파업 중이다. 두 노조 조합원은 8만여 명에 이른다. 경영계는 31일 예정된 기아차의 통상임금 소송 결과를 숨죽인 채 기다리고 있다. 노조가 이긴다면 미지급 임금을 달라고 머리띠를 두를 테고, 반대로 사측이 이긴다면 통상임금 범위를 확대하라며 투쟁에 나설 수 있어서다.
9월 정기국회에는 △근로시간 단축 △공공부문 정규직화 △전교조 합법화 등 폭발성이 강한 노동 현안 관련 법안이 줄줄이 대기하고 있다. 양대 노총 출신이 고용노동부 장관과 노사정위원장에 임명되면서 노동계의 기대감은 점점 커지고 있다. 만약 이런 사안들이 노조의 요구대로 처리되지 않는다면 노조의 ‘정치 파업’이 본격화될 가능성을 크다.
○ 상처뿐인 강경 투쟁
하지만 과거처럼 파업을 하면 임금이 오르는 등 근로조건이 개선된다는 공식은 깨진 지 오래다. 외환위기 직후인 2000년에는 250건의 노사분규가 발생했다. 그해 임금인상률은 7.5%로, 관련 집계를 시작한 1998년 이후 가장 높았다. 근로손실일수가 100만 일이 넘은 2001∼2004년에도 임금인상률은 5∼6% 수준을 유지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강경 투쟁은 ‘밑지는 장사’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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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노동계가 공장의 해외 이전과 4차 산업혁명에 따른 일자리 위기에 대처하려면 노사관계의 지향점을 ‘협력’에 둬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권혁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기업은 노사 모두의 생존 기반”이라며 “기업의 지속 가능한 성장이야말로 가장 실효적인 근로조건 개선 방식임을 노조도 인식해야 한다”고 말했다.
○ 막중한 정부의 역할
이런 현안을 마주한 정부의 역할은 그 어느 때보다 막중하다. 김영주 고용부 장관은 24일 민노총을 직접 찾아 △적폐청산위원회 설치 △근로감독 행정 강화 등을 약속했다. 고용부 장관의 민노총 방문은 2년 5개월 만으로 정부와 민노총의 대화가 본격적으로 재개된 셈이다.
새 정부 노동정책에 대한 노동계의 ‘간섭’은 한층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최종진 민노총 위원장 직무대행은 이날 노정교섭 정례화를 요구했다. 이에 김 장관은 “사용자와 노동자 어느 한쪽 편을 들지 않겠다”고 했다. 하지만 중립적 위치에서 대타협을 추진해야 할 노사정위원장에 민노총 간부 출신이 임명되면서 경영계의 우려는 커지고 있다. 결국 정부의 균형추 역할이 향후 노사관계를 결정할 핵심 변수라는 전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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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열 기자 ryu@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