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력인력 키운 이승만 대통령 에너지공급 위해서만이 아니다… 국방 자강의 큰 목적 있었던 것 한미상호방위조약 따내고도… 美 지원 없는 통일준비까지 국가 戱畵化작태 만연한 지금… 黨政靑에 진정한 지도자 있는가
김진현 객원논설위원 세계평화포럼 이사장
1960년 2월 16일 이승만 대통령의 국무회의 어록이다. 한국 원자력제도가 정비된 것은 1955년 유엔 원자력평화이용회의가 열린 지 3년, 일본보다 4년 뒤졌다. 그때는 외무부 장관도 해외출장 가서 손수 양말 내의 빨며 외화를 절약하던 시기다. 정부 예산의 반 이상이 미국 원조로 충당되고 공무원의 출장 외화는 다과를 막론하고 대통령이 직접 결재하던 원시 시절이었다. 그 ‘절대적’ 외화 부족 시기에도 백지상태의 원자력 연구인력을 키우기 위해 해외 유학에 국가장학금을 풀었다. 나중에 과학기술부 장관까지 지낸 국가장학금 수혜자의 고백에 의하면 장학금이 후해 그중 일부를 국내에 역송금, 부모님들은 이 돈으로 지탱했다.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5대 핵무기 독점국은 물론이고 그 후 원자력 연구를 시도한 한국 일본 이스라엘 인도 파키스탄 모두 목적은 에너지 공급만이 아니었다. 국방 자강이라는 보다 큰 목적을 위한 수단이기도 했다. 한국의 20세기 전반은 일본 때문에 막힌 부분이 많았다. 특히 일본을 벗어난 과학기술의 근대적 독립의 시작은 단연 ‘원자력’이었다. 이런 특징 때문에 과학기술이 선진국에선 대학과 아카데미에서 시작해 발전한 것과 달리 한국에선 원자력연구소,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등 국책연구소가 출발점이었다.
그래도 머리를 짜낸 끝에 결론이 나왔다. 한국 공군력을 총동원해 부산 대구 수원 평택 등 미 공군기지를 습격해 탈취한 미 전투기와 폭탄으로 북한을 공습하면서 북진하는 작전이었다. 이 대통령도 이런 환상적 독자 북진 시나리오가 실행 가능하리라 믿었을까. 아니다. 이 대통령의 고독하고 처절한 저항과 결투로 따낸 한미상호방위조약이지만 미국 원조가 언제까지나 계속될 것을 기대하지 않았기에 독립국가의 자립의식을 고취하고 아무리 어려운 조건이라도 남의 노예가 되지 않는 나라의 국방 자립플랜 A, B, C, D를 언제나 미리미리 마련하는 훈련을 하라는 뜻이었다.
이런저런 인연으로 이승만 김구를 포함해 10여 개 애국선열기념사업회와 관계를 맺어 왔다. 올해 6, 7월엔 백범 68주기를 시작으로 신간회 90주년, 제헌절 69주년, 여운형 70주기(같은 날 이승만 52주기) 기념식을 드나들었다. 국기에 대한 경례, 애국가, 묵념, 국가 대표기관(국회의장, 국가보훈처장) 추념사 포함이란 형식에선 대한민국의 국가적 행사임에 틀림없었으나 애국가는 1절만 부르는 곳도 있고 대표 식사(式辭)에 개인 편견이 가득 찬 것도 있었다.
이승만과 김구 기념사업회 간의 화해를 추진했던 나로서는 안재홍 여운형 조봉암 조소앙 장준하 선생의 뜻을 이으려는 후계자들도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정체성을 정리하고 강화하는 공동의 노력, 수렴 승화하는 노력을 기울였으면 한다. 2017년에는 1945년의 재연을 막기 위한 공동의 노력을 결단했으면 한다. 정부도 이승만과 김구 추념식에 보훈처 ‘서울지방보훈청장’이 아니라 보훈처장이 직접 나오는 진지함을 보여야 한다.
안의 통합과 연대 그리고 실력 배양이라는 원형질의 자강, 진정 이승만 같은 지극한 자강의 리더십이 지금처럼 절절할 때가 없다. 국가를 희화화하고 무력화하는 작태가 만연한 지금 우리는 청와대와 국회와 정당에 진정 지도자가 있는지, 사회 각계에 반성 참회하는 엘리트가 있는지, 깨어있는 국민이 있는지 질문을 던지게 된다. 올 8·15 광복절엔 이 나라 ‘자강’의 결의가 나올까.
김진현 객원논설위원 세계평화포럼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