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디스 스코티시오픈 우승 원정길 비행기 연착해 국제선 놓쳐 항공사 착오로 캐디백 하루前 도착 68세 최고령 ‘골프 대디’ 부친 “시차 적응-컨디션 유지나…” 위로 선두 달리던 웹 16, 17번홀 실수… 한국선수 LPGA 21개 대회서 11승
‘무장해제’된 이미향은 샤프트가 약한 골프채를 빌려 연습하다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레이디스 스코티시오픈 개막 하루 전날인 지난달 26일에야 겨우 자신의 캐디백을 받아 고작 9홀만 코스 점검을 할 수 있었다. 그런 딸에게 아버지 이영구 씨(68)는 “다음 주 메이저 대회인 브리티시여자오픈을 앞두고 액땜한 셈 치자. 시차 적응하고 컨디션이나 유지하자”고 위로했다.
몸이 덜 풀린 이미향은 영국 노스에어셔의 던도널드 링크스 코스(파72)에서 열린 대회 1라운드를 73타로 마친 뒤 2라운드에서도 75타로 부진해 2타 차로 컷 탈락을 피했다. 선두와는 9타 차나 벌어졌다.
이미향은 시즌 개막 후 12개 대회에서 5차례 컷 탈락하며 20위 이내에는 한 번도 진입한 적이 없었다. 이번 대회에서는 성적을 의식하지 않고 마음을 비우니 모든 게 술술 풀렸다. 1, 2라운드에 50% 안팎이던 페어웨이 안착률이 3, 4라운드에는 80% 가까이로 올랐다. 퍼트가 번번이 짧아 고전했던 그는 1, 2라운드 평균 31개였던 퍼트 수를 3, 4라운드에는 평균 27.5개로 뚝 떨어뜨렸다. 강풍, 추위와 싸운 이미향은 “거센 바람 속에 퍼트 연습에 집중했던 효과를 보면서 자신감을 되찾았다. 내가 우승해 인터뷰하는 꿈을 꿨다는 고모의 연락으로 좋은 기운을 받았다”며 웃었다.
전반에만 5타를 줄이며 맹추격전을 펼친 이미향은 통산 41회 우승에 빛나는 노장 웹이 선두를 달리다 16번홀 보기에 이어 17번홀에서 두 차례 벙커에 빠지며 더블보기로 무너지는 행운까지 따랐다. 보통 대회 때 18번홀 주변에는 순위를 알려주는 리더보드가 설치돼 있지만 이번 대회에는 없었던 것에도 희비가 엇갈렸다. 이미향은 “웹이 어떻게 됐는지 몰랐기 때문에 마지막까지 긴장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반면 웹은 “리더보드를 통해 정확한 상황을 알았다면 코스 공략이 달라졌을 것이다”라며 아쉬워했다.
네 살 때 연습장에서 안정된 피니시 자세를 보이고 있는 이미향. 아버지 이영구 씨는 “코치 없이 박세리 스윙을 따라 하던 시절이었다”고 말했다. 키(162cm)가 작은 이미향은 하루 1400개씩 연습 스윙을 한 끝에 270야드 넘는 장타를 날린다. 올댓스포츠 제공
이미향(왼쪽)이 아버지와 함께 찍은 뒤 익살스럽게 편집한 셀카 사진. 이미향은 칠순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딸 뒷바라지로 늘 외롭게 고생하는 아버지에 대한 고마움을 잊지 않는다. 이영구 씨 제공
김종석 기자 kjs0123@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