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사람을
사랑할 날은 올 수 있을까
미워하지도 슬퍼하지도 않은 채
그리워진 서로의 마음 위에
물먹은 풀꽃 한 송이
방싯 꽂아줄 수 있을까
(…)
미쟁이 토수 배관공 약장수
간호원 선생님 회사원 박사 안내양
술꾼 의사 토끼 나팔꽃 지명수배자의 아내
창녀 포졸 대통령이 함께 뽀뽀를 하며
서로 삿대질을 하며
야 임마 너 너무 아름다워
너 너무 사랑스러워 박치기를 하며
한 송이의 꽃으로 무지개로 종소리로
우리 눈뜨고 보는 하늘에 피어날 수 있을까
시인 곽재구는 울림이 굵은 시를 쓴다. 기교 없이 뜨끈뜨끈한 시를 쓴다. 그래서일까. 그의 시 중에는 가슴이 물컹해지는 작품이 무척 많다. 그런데 조금 억울하게도, ‘사평역에서’의 인지도에 밀려 다른 작품들이 덜 회자되는 감이 있다. 다시 생각해봐도 시 ‘사평역에서’가 참 명작이기는 하다. 추운 겨울에 읽어보라. 가만히 있어도 발가락이 시려오면서, 마음에 서리가 핀다. 스산하게 쓸쓸한 분위기가 압권이다. 그 작품은 겨울로 미뤄두기로 하고 오늘은 곽재구 시인의 다른 시를 추천한다. 찾아보니 이 시를 애송하는 분들이 적지 않다. 숨은 애독자가 많은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이 시는 마음먹고, 작정하고, 대놓고 인간적인 세계를 지지한다. 아주 확실히 지지한다. ‘사랑이 밥 먹여 주냐, 인간성이 좋으면 손해나 본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사랑을 선포한다. 아주 확실히 선포한다. 곽재구 시인은 머뭇머뭇하지 않는다. 인간은 당연히 인간적이어야 한다고, 그는 독립군이 독립을 믿듯이 믿는다.
상상해보면 너무 좋다. 미장이와 대통령이 서로 네가 더 사랑스럽다 칭찬하는 사회. 지위가 아니라 인간이 먼저인 사회. 허구에 불과하다고 해도 떠올리면 뿌듯하다. 그러면 된 거다. 시는 된 거다.
나민애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