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C 에스허르의 ‘하늘과 바다 1’. 출처 wikipedia.org
대학 2학년 2학기 설계 주제는 교회였다. 과제로 주어진 땅은 서울 신촌의 가파른 언덕 주택밀집지. 대지 높낮이 차 때문에 지하공간을 널찍하게 파낸 결과물이 많았다. 내 계획안은 땅파기 공사를 최소화하고 필요 공간을 별도 건물처럼 분리해 쌓아 연결하는 방법을 썼다.
그럴싸했지만 아무리 해도 납득할 만한 동선(動線)이 나오지 않았다. 좌절을 뒤집어쓰고 설계실에 앉아 있을 때 한 선배가 스케치를 들여다보더니 새 트레이싱지를 씌워주며 말했다. “공간으로 그린 곳을 벽으로, 벽으로 그린 곳을 공간으로 바꿔 봐.”
건물의 솔리드와 보이드는 그 공간이 가진 유일한 답이 아니다. 21년이 지나서인지, 벽이 단단해서인지, 잊고 산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