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관 정치부장
대수보회의를 눈여겨본 건 청와대발 제헌절 메시지를 기대했기 때문이다. 꼭 개헌에 대해 문 대통령이 무슨 말을 내놓을지가 궁금해서만은 아니었다. 예순아홉 돌을 맞은 제헌절이지만 올해는 역사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의미가 아주 특별하다. 문재인 정부는 헌법재판소의 전직 대통령 탄핵 심판 결정을 바탕으로 탄생한 권력 아닌가. 헌법적 절차에 따라 한 정권이 무너지고 새 정부가 들어선, 세계사에서 유례가 없는 일대 사건이었다. 브라질 지우마 호세프 전 대통령도 탄핵을 당했지만 의회의 결정이었고, 대통령제하에서 헌재에 의한 탄핵 결정은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다시 말해 문재인 정부의 정통성은 ‘헌법’ 그 자체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허나, 아무런 제헌절 메시지도 나오지 않았다. 모두발언 내내 최저임금 인상 결정에 따른 노사 협력을 당부하고 부정부패 척결과 방산비리 근절을 강조했을 뿐 제헌절 얘기는 일언반구 없었다. 청와대 관계자는 “문 대통령은 이미 개헌에 대한 의지를 충분히 밝혔다”며 “개헌 추진은 대통령이 아닌 국회의 몫”이라고 했다. 또 국회의장 주관하에 개헌토론회가 열리는 마당에 굳이 대통령이 개헌 메시지를 내놓을 필요가 있느냐는 설명이었다. 물론 청와대로선 개헌은 그리 마뜩지 않은 이슈일 수 있다. 자칫 임기 초 국정동력을 떨어뜨리는 블랙홀이 될 수도 있다. 과거 대통령들도 임기 초반 개헌 드라이브를 건 예는 찾아보기 힘들다.
권력을 만들고 쟁취하는 데는 ‘화려한 거품’이 필요하다. 그래야만 사람이 모이고 세를 발휘할 수 있다. 그러나 권력을 잡은 뒤에는 거품을 걷어내고 ‘제도권력’을 어떻게 운영할지에 대한 방법론이 필요하다. 도덕적 권위를 앞세워 국민 다수의 지지만 바라보고 국정을 운영할 수는 없다. 때론 국민 다수의 지지에 역행해서 결단을 내리고 책임을 지는 순간도 올 것이다.
벌써 두 달이 훌쩍 지났다. 절차를 생략하더라도 빨리 성과를 내고 세상을 바꿔야 한다는 생각이 앞섰던 것은 아닌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아직 4년 10개월이나 남았다. 문재인 정부의 성공은 소탈한 언행이나 제스처에만 있지 않다. 결국 국정운영 능력, 즉 콘텐츠다. 현재까지는 자꾸 부분의 문제를 전체로 치환하는 것 같아 우려스럽다. 전체 구조 안에서 부분을 볼 것이냐, 부분의 문제를 전체로 볼 것이냐는 천양지차다. 제헌절에 드는 이런저런 생각이다.
정용관 정치부장 yonga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