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주인간/캐슬린 매콜리프 지음/김성훈 옮김/352쪽·1만7000원·이와우
외계에서 온 기생생물에 감염된 사람이 이상행동을 보이는 내용을 다룬 영화 ‘패컬티’(1998년). 영화에서처럼 인간의 의식을 지배하는 기생생물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지만 메디나충 등 일부 기생충은 인간에게 실제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저자는 분석했다. 사진 출처 chapter.org
범인은 기생생물이다. 고양이의 내장 속에서만 번식이 가능한 톡소플라스마(T 곤디)가 주인공. 고양이의 배설물을 통해 원래의 영토에서 탈출한 후 먹이를 찾는 쥐가 이 배설물에 접촉하면 그 순간 쥐의 몸속으로 침입해 신경을 조작한다. 쥐는 자신을 해칠 고양이의 뒤꽁무니를 쫓게 되고, 금세 잡아먹히고야 만다. 정신병에 걸린 쥐의 이상 행동이 아니라 쥐를 숙주로 삼은 기생생물의 조종이 배후에 있는 것이다.
T 곤디의 타깃은 쥐만이 아니다. 기생생물학의 아버지로 추앙받는 체코의 오토 이로베츠는 조현병을 앓는 사람이 일반인보다 T 곤디에 감염된 경우가 더 많다는 것을 밝혀냈다. 실제로 1700년대 프랑스 시인 사이에서 고양이 열풍이 불면서 당시 파리에서 조현병 발병률이 급격히 높아졌다고 한다. 우리가 정신병으로 여기는 질환 역시 알고 보면 기생생물의 배후 조종이 자리 잡고 있었다는 뜻이다.
책은 인류의 역사와 궤를 같이한 기생생물의 다양한 면모를 추적한다. 동유럽의 유명 설화인 ‘뱀파이어’는 종종 밤에 나타나 사람을 죽이고 강간하는, 악랄한 캐릭터다. 특히 다른 이를 물어버리면 똑같이 뱀파이어가 된다. 이 같은 현상은 실제로 광견병 바이러스를 옮은 환자에게서도 나타나는 증세다. 접촉을 통한 전염성이 강하며 이상 행동 역시 유사하다. 이처럼 인간을 숙주로 삼아 옮겨 다니는 기생생물은 과거부터 현재까지 늘 우리 주변에 존재했다고 저자는 말한다.
생물학에 머무르지 않고, 사회 전 분야로 기생생물의 범위를 확대하는 점 역시 독특하다. 외국인 혐오와 인종 차별 등을 세균 감염에 대한 두려움으로 해석하고, 낯선 사람에게서 감염되지 않기 위해 악수와 적당한 매너가 생겨났다는 해석까지. 정치, 사회, 문화인류학 등 다양한 분야를 기생생물과 숙주, 포식자의 관계로 풀어낸다.
그렇다고 기생생물을 박멸하거나 이들과 전투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저자가 강조하는 점은 기생생물이 인간과 함께할 수밖에 없는 ‘공존자’라는 것이다. 지금껏 밝혀낸 기생생물만 1600여 가지. 사람을 미치게 하거나, 아프게 하는 기생생물뿐 아니라 기쁨과 긍정을 가져다주는 기생생물 역시 많다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손은 경제학 이론이 아니라 기생생물에 있는 것은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