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진균 정치부 차장
문재인 대통령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성공과 실패를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본 사람이다. 특히 노 전 대통령이 어떻게 국민과 헤어지게 됐는지 그 과정을 잘 아는 사람이다. 이때 축적된 실패에 따른 반성과 교훈이 새 정부를 이끄는 큰 자산이 되고 있을 것이다.
출발은 성공적인 것 같다. 5·9대선 이후 “의외다. 새 정부가 적어도 생각보다 훨씬 잘하고 있다”는 평을 많이 듣는다. 연애도 해 본 사람이 더 낫다더니….
사정이 이렇다 보니 문 대통령을 향한 애정의 강도, 국민의 국정 지지도는 80%를 넘는다. 문 대통령의 노력도 평가받아야 하지만 정확히 말하면 처참하게 망가진 박근혜 정부의 기저 효과까지 더해진 시너지 효과가 반영된 수치일 것이다.
그렇지만 ‘운명’처럼 다가온 사랑도 식을 때가 있다.
1993년 김영삼(YS) 정부 출범 직후 YS는 와이셔츠 차림으로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하곤 했다. 권위주의를 벗겨낸 소통 행보였다. 궁궐 만찬 같았던 청와대 식사 메뉴는 칼국수로 바뀌었다. 하나회 청산, 국가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 개혁 등 YS식 ‘적폐 청산’에도 나섰다. 과거와 다른 그의 신선한 행보에 국민은 열광했다. 문 대통령 이전까지 YS는 새 대통령 집권 초 최고 국정 지지도 기록을 가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YS와 국민의 사랑은 오래가지 못했다. 불꽃같은 사랑의 끝은 파경에 가까웠다.
문 대통령의 공약 가운데 일부는 연인의 마음을 얻기 위한 말의 성찬에 가깝다. 허니문 기간이 지나면 국민은 장밋빛 미래가 아니라 달라진 삶을 투영해 대통령을 바라볼 것이다. 문 대통령은 4·13총선 때도 “호남이 지지하지 않으면 정계 은퇴”라고 약속했다가 곤욕을 자초하지 않았던가.
인사청문회 논란 역시 문 대통령 스스로 키운 책임이 크다. 그가 대선 후보 때 내세운 고위 공직 임용 배제 5대 원칙 가운데 위장전입 등은 1970, 80년대에 젊은 시절을 보내고 사회 활동을 한 인사들에겐 100% 적용하기 힘든 조건이다. 81만 개 공공 일자리 창출, 대통령의 24시간 공개 등도 현실성이 떨어지긴 마찬가지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국회에서 열린 취임선서에서 “불가능한 일을 하겠다고 큰소리치지 않겠다. 잘못한 일은 잘못했다고 말씀드리겠다”고 했다. 중요한 것은 솔직한 인정, 그리고 진심 어린 존중과 설득이다. 그렇다고 불과 한 달여 전 국민의 마음을 얻는 데 실패한 정치세력이 ‘기회는 이때’라는 식으로 허니문부터 불화를 부추기는 것도 아름답게 보이진 않는다.
길진균 정치부 차장 le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