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산 밧줄 사고로 아빠 잃은 5남매, 납골함에 넣은 ‘하늘로 부친 편지’
경남 양산시 아파트 외벽 밧줄에 매달려 창틀 보수 작업을 하다 주민이 밧줄을 끊는 바람에 떨어져 숨진 김모 씨의 납골함(왼쪽 사진). 그 안에 5남매가 담아둔 ‘하늘나라의 아빠’에게 쓴 편지들. 채널A 캡처
‘아빠만큼은 못 하겠지만 우리가 엄마 잘 책임질게. 여기서 너무 고생하면서 살았으니까 올라가서는 편하게 아프지 말고 있어.’
16일 경남 김해시의 한 추모관 내 납골함에 놓인 편지의 내용이다. 편지 속 ‘아빠’ 김모 씨(46)는 8일 세상을 떠났다. ‘밧줄 절단 사건’의 피해자 김 씨다. 이날 경남 양산시의 한 아파트 외벽에서 작업 중이던 김 씨는 휴대전화 음악 소리가 시끄럽다는 이유로 주민 서모 씨(41)가 밧줄을 자르는 바람에 떨어져 숨졌다.
김 씨의 아내 권모 씨와 5남매는 하루아침에 든든한 남편, 사랑하는 아빠를 잃었다. 5남매는 아빠에 대한 그리움을 편지에 담았다. 김 씨의 큰딸(17)은 ‘어제 아빠가 우는 거 보면서 나만 힘든 게 아니구나. 매년 챙긴 결혼기념일&어버이날인데 어제만 울길래. 아, 우리 아빠가 늙었구나. 앞으로 일이 다 잘 풀리고 좋은 일만 있길’이라고 아빠 생전에 쓴 편지를 납골함에 놓았다. 그 옆에는 립밤(입술보호제) 새 제품을 뒀다. 겨울철 야외에서 일하는 아빠를 걱정해 아이들이 선물한 것이다. 다가오는 무더위도 걱정했었다. 큰딸은 ‘내가 준 선밤(선크림 종류)도 열심히 발라야 해. 이제 여름이 곧 오는데 아빠 일이 너무 힘들까 봐 걱정이야. 수분 보충도 열심히 하고 너무 무리하지 마!!’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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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째 아들은 직접 만든 종이 카네이션을 아빠 곁에 놓았다. ‘사랑해요, 아빠는 너무 멋져요. 아빠를 너무 사랑해요. I love you. 나는 아빠가 좋아요’라고 쓴 그림 편지도 남겼다. 아빠가 멀리 떠난 걸 모르는 생후 27개월의 막내딸은 자동차 장난감 3개를 선물했다. 일을 마치고 돌아온 아빠와 함께 갖고 놀던 장난감이다.
가족들은 퇴근 후 기분 좋게 반주를 즐긴 아빠의 모습을 떠올리며 납골함에 소주병과 소주잔을 나란히 놓았다. 23년간 함께한 남편을 떠나보낸 아내 권 씨는 캘리그래피(손으로 쓴 그림문자)에 못다 한 사랑을 담았다. ‘사랑하는 내 남편, 나보다 더 나를 사랑하는 당신이 있어 행복합니다. 그리고 변함없이 사랑합니다.’
큰 충격에 빠진 권 씨와 5남매이지만 서로를 보듬으며 슬픔을 이겨내고 있다. 넷째 아들은 아빠가 세상을 떠난 걸 알면서도 “내가 울면 엄마가 더 슬프니까… 지금은 안 울거야”라며 엄마를 달래고 있다.
최지선 aurinko@donga.com / 김해=배영진 채널A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