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이틀간 피해 ‘눈덩이’
“오라는 비는 안 오고 이게 웬 날벼락인지….”
1일 전남 순천시 월등면 대평리의 한 과수원에서 만난 유구상 씨(64)가 허탈하게 말했다. 망연자실한 유 씨 앞에는 셀 수 없이 많은 매실이 떨어져 있었다. 매실 수확은 6월 말부터다. 전날 순천 지역에는 돌풍과 함께 500원짜리 동전만 한 우박이 쏟아졌다. 불과 30분 사이에 유 씨의 복숭아밭과 매실밭 3ha가 초토화됐다. 가지에 겨우 붙어있는 열매도 마치 포탄 파편에 맞은 듯 상처투성이였다. 유 씨는 “40년 농사지으며 20년 전과 올해 딱 두 번 우박 피해가 났다”며 “이번 피해는 너무 커서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한탄했다.
○ 이틀간 전국 휩쓴 ‘우박 폭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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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 주산지인 전남 곡성군 겸면 죽산마을 주민들도 울상이다. 문재성 이장(61)은 “작은 사과 곳곳에 생채기가 생겼다”며 “특히 잎이 대부분 찢어져 앞으로 3∼5년간 정상 수확이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며 막막해했다.
전남에서만 순천시와 곡성 담양 장성군 등 4개 시군에서 1700ha 정도의 우박 피해가 발생한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
충남 부여군과 예산군에도 지난달 31일 오후 3시경 지름 1, 2cm 안팎의 우박이 쏟아져 농작물 피해가 속출했다. 우박이 떨어진 시간은 몇 분에 불과했지만 예산군 신암면 지역을 중심으로 사과와 배 등 100여 농가가 피해를 입은 것으로 집계됐다.
1일에도 우박 폭탄은 이어졌다. 이날 오전 서울 강남 일대에 1시간가량 천둥 번개를 동반한 강한 소나기와 우박이 쏟아졌다. 지름 1cm 크기의 우박이 아스팔트 위로 쌓일 정도로 떨어졌다. 놀란 시민들은 건물로 피했고 도로를 지나는 차량들이 가로수 아래에 급히 멈추기도 했다. 지난해 말 개통한 서울 강남구 수서고속철도(SRT) 수서역에서는 물난리까지 났다. 갑자기 쏟아진 비로 역 일부 구간에 빗물이 샌 것이다. 지하 1층으로 연결되는 에스컬레이터 4대가 빗물에 젖어 운행을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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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월 말까지 ‘우박 위험’
우박은 위아래 공기의 온도차가 클 때 아래에서 위로 강한 상승기류가 발생하면서 생긴다. 따뜻한 공기와 물이 올라가 작은 얼음알갱이가 되는데, 상승기류 때문에 계속 내려갔다 올라가기를 반복하면서 커지다가 중력을 이기지 못하는 무게가 되면 떨어진다.
지난달 31일 호남 지역에 내린 우박은 서해상에서 들어온 따뜻한 수증기 때문에 아래 공기와 위 공기 온도차가 커지면서 발생했다. 1일 충청과 영남 지역에 내린 우박은 북쪽에서 내려온 차가운 공기가 상층부 온도를 떨어뜨리며 강한 상승기류를 만들어 생겨났다.
기상청 관계자는 “기온 변화가 큰 5, 6월에 우박이 자주 발생한다”며 “찬 공기가 있는 6월 말까지 우박이 발생할 수 있어 농작물과 시설물 피해에 잘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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