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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희의 사회탐구]다당제 선거가 재밌다

입력 | 2017-05-11 03:00:00


정성희 논설위원

이번 대선이 역대 선거와 다른 점은 촛불 민심이 만들어낸 보궐선거라는 점 말고도 다자구도로 치러진 선거라는 점이다. 과거에도 다수 후보가 출마한 선거가 있었지만 DJP연합, 노무현 정몽준 단일화, 안철수 사퇴에서 보듯 양자대결로 마무리되곤 했다. 1노 3김이 출마한 1987년 대선은 인물 중심으로 급조된 야당들의 분열이지, 다당제 선거는 아니었다.

선택권 넓힌 다자대결

지난해 총선 직전 새정치민주연합이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으로 쪼개졌고, 올해 대선 직전 새누리당이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으로 갈라졌다. 여기에다 정의당까지 원내 5당은 모두 후보를 냈다. 모 아니면 도, 보수꼴통 대 친북좌파 프레임에 익숙한 사람에겐 당혹스러웠겠지만 만날 자장면 아니면 짬뽕만 먹다가 뷔페를 먹게 된 사람처럼 고르는 재미가 제법 쏠쏠했다. 다자구도는 정치적 균열의 반영이기도 하지만 선택권을 넓혔다는 점에서는 역사의 진보다.

이번 대선은 한국 정치에서 다당제 정착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지역주의에 기초한 3김 시대의 후진적 다자구도와는 달리 정당 색깔로 승부한 진정한 다자구도였다. 영화 ‘어벤져스’ 주인공처럼 각각의 후보는 자신만의 정체성과 메시지를 보여주며 드라마를 만들었다. 분열은 패배라는 공식을 기억하는 국민, 특히 보수 유권자들은 선거 과정에서 단일화를 기대했지만 후보들은 단일화 압력을 이겨내며 소신 투표를 요구했다. 정치공학적 선택이나 전략적 사고는 후보가 아니라 유권자의 몫이었다. 양자구도에 익숙한 국민들은 난감했지만 독일 북유럽 등 연정이 보편화한 나라에선 익숙한 풍경이다.

양자구도에서는 결코 드러나지 않았을 쟁점이 부상한 것도 흥미롭다. 동성애와 사형제는 미국 대선의 고전적 이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금기어였다. 정책이 아닌 윤리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홍준표 후보는 TV토론에서 문재인 후보에게 동성애에 대한 견해를 물었고 이때 명확하게 동성애 지지를 선언한 심상정 후보가 수혜자가 되었다. 소수 의견이 존중받고 다양한 국민적 요구가 반영된다는 점이 다당제의 장점인데 바로 이 장면이 그랬다.

문재인 대통령은 5자 구도에서도 41.08%라는 비교적 높은 득표율을 얻어냈다. 홍준표 후보도 막판 선전으로 당 재건을 위한 발판을 마련했고 안철수 후보는 아쉬운 성적표를 받았지만 정치를 지속할 수 있는 동력만큼은 확보했다. 단일화 압력을 많이 받았던 유승민 후보는 의원 수 20명을 지켜내며 바른정당의 독자 생존력을 인정받았고, 진보정당으로 사상 최다 득표를 한 심상정 후보는 캐스팅보트를 쥘 수 있게 되었다. 이는 한국에서도 다당제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 신호탄이다.

문 대통령은 “저를 지지하지 않은 분들도 섬기는 통합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말했다. 그렇게 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만일 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의 양자구도였다면 선거기간에도 앞으로도 ‘좌파 우파 놀이’가 한창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선거로 존재를 드러낸 중도로 인해 보수궤멸이니 좌파척결이니 하는 슬로건은 예전 같은 위력을 갖지 못하게 됐다.

연정 협치는 다당제와 세트

‘87년 체제’에서 30년이 지난 2017년에 다당제 대선이 치러진 의미가 적지 않을 것 같다. 집권당이 일방적으로 통치하는 시대가 종말을 고하고 있다. 누가 집권하든 다당제에선 연정과 협치는 세트다. 하물며 여소야대 정국에서야. 나는 선거가 끝나고 나서야 19대 대선에서 그토록 찾아 헤매던 시대정신을 발견했다. 소통과 협치가 그것이다.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