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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맞혀라” 불법베팅의 유혹

입력 | 2017-04-28 03:00:00

‘대선 토토’ 도박사이트 기승




5월 9일 치러지는 대통령 선거의 당선자를 맞히는 불법 인터넷 도박사이트가 등장했다. 27일 확인한 도박사이트에서는 베팅액에 따라 배당률이 수시로 바뀌고 있었다. 주요 후보 5명의 이름 옆에 있는 숫자가 배당률이다. 인터넷 사이트 캡처

‘해당 경기는 5월 9일 실시되는 대통령 투표에 근거합니다.’

직장인 김모 씨(28)는 한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판에서 이런 글을 발견했다. ‘첫 가입 시 120% 충전. 2017 대선 후보 예측 이벤트 경기 업데이트’라며 인터넷 주소도 링크돼 있었다. 클릭하자 ‘일○○’라는 제목의 사이트로 연결됐다. 대통령 선거 당선자를 맞히는 인터넷 도박 사이트였다.

○ 대선 도박 사이트 등장

현재 국내에서는 스포츠토토만 온라인 베팅이 가능하다. 나머지는 모두 불법이다. 대선 당선자 베팅 사이트 역시 당연히 불법이다. 해외에는 합법적으로 대통령 선거 결과를 놓고 베팅하는 도박 사이트가 있지만 국내에는 전례가 없다.

문제의 사이트에서는 여러 유형의 도박이 가능하다. 대선 도박 코너는 최근 마련된 것으로 보인다. 휴대전화 번호와 은행 계좌번호를 입력해 회원으로 가입한 뒤 인터넷뱅킹이나 폰뱅킹 무통장입금 등의 방법으로 예치금을 입금하면 베팅할 수 있다. 원하는 대선 후보의 이름 옆 ‘베팅하기’ 아이콘을 클릭하면 미리 입금한 돈이 자동으로 베팅된다. 도박 사이트 운영자는 카카오톡으로 주로 대화하지만 통화도 가능하다. 김 씨에 따르면 운영자는 “지금 인터넷이 원활하지 않은 곳에 있다”고 말했다.


물론 도박 사이트 자체가 가짜일 수도 있다. 하지만 실시간으로 바뀌는 베팅 상황을 보면 진짜일 가능성이 커 보인다. 27일 오전 11시 기준으로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의 배당률은 1.46배,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 23.00배,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 3.20배,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 20.00배, 정의당 심상정 후보 46.00배였다.

배당률이 낮은 건 그만큼 베팅한 사람이 많다는 뜻이다. 당선 확률을 높게 본 것이다. 예를 들어 문 후보에게 100만 원을 베팅한 사람은 당선 시 146만 원을 받는다. 같은 방식으로 심 후보는 100만 원 베팅 시 4600만 원을 받을 수 있지만 해당 도박 사이트에서는 배당금 상한선을 500만 원으로 정했다. 1인당 베팅액도 최대 200만 원으로 제한했다. 하지만 한 사람이 아이디 여러 개를 만들어 베팅할 수 있다. 무제한 베팅이 가능한 것이다. 미성년자의 베팅을 금지하는 문구나 절차도 없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배당률 업계 최고 보장’ ‘먹튀 이력 NO 마음 놓고 이용하세요’ 등 도박 사이트를 홍보하는 글이 확산되고 있다. 특히 ‘베팅 정보’라는 이름 아래 가짜 뉴스까지 만들어지고 무차별 확산된다. 한 도박 사이트 이용자는 “베팅한 후보가 아닌 다른 후보를 폄훼하는 뉴스나 확인되지 않은 정보를 퍼뜨리고 있다”고 말했다.

○ 사회 현안 다루는 불법 도박 성행

지금까지 불법 인터넷 도박은 대부분 국내외 스포츠 경기를 중심으로 이뤄졌다. 이 과정에서 실제 스포츠 선수들의 승부 조작으로 이어진 경우도 종종 있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정치·사회 이슈에 대한 불법 도박이 공공연히 이뤄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최순실 국정 농단’이 터진 뒤 최순실 씨나 우병우 전 대통령민정수석 등의 구속 여부, 헌법재판소의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안 인용 여부, 인공지능(AI) 알파고와 이세돌의 바둑 대결 결과 등을 놓고 인터넷 불법 도박이 진행된 것으로 관계 기관은 추정하고 있다.

사행산업감독위원회에 따르면 국내 불법 도박 규모는 2015년 기준으로 약 83조 원. 특히 인터넷 불법 도박이 급증하고 있다. 하지만 적발은 쉽지 않다. 대부분 해외에서 사이트를 개설하고 점조직으로 운영하는 데다 계속해서 도메인을 바꾸기 때문이다. 대선 도박 사이트도 광고에 적힌 추천인 코드가 없으면 아예 입장 자체를 제한하는 등 수사기관의 추적을 막기 위해 여러 장벽을 설정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베팅 결과에 따라 투표로 당선된 당선자를 인정하지 않을 수도 있다”며 “정치까지 게임거리로 취급하는 건 민주주의 본질을 훼손하는 행위”라고 말했다.

조윤경 yunique@donga.com·정지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