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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정훈의 호모부커스]지도자의 책 읽기

입력 | 2017-04-17 03:00:00


표정훈 출판평론가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토니 모리슨, 도리스 레싱 같은 작가들의 작품을 읽으며 정체성 문제를 깊이 고민했다. 큰딸 말리아에게 전자책 단말기를 선물하면서 레싱의 소설 ‘황금 노트북’을 담아 주었다. 아우구스티누스, 니체 같은 철학자들의 책, 마틴 루서 킹 전기, 링컨 대통령에 관한 책도 즐겨 읽었다. 애독서에서 현대 문학의 비중이 크다는 게 특징이다. 그의 설득력 높은 대화와 연설 능력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미국 역대 대통령 가운데 시어도어 루스벨트도 독서광으로 손꼽힌다. 여행을 떠날 때도 50권 넘는 책을 챙겨 갔다. 애독서는 호메로스, 셰익스피어, 존 밀턴 등 서양 문학 고전이었다. 영국의 윈스턴 처칠은 청년 장교 시절부터 에드워드 기번의 ‘로마제국 쇠망사’를 탐독했다. 그가 시대의 흐름을 읽어내며 격조 높은 문장과 연설을 구사할 수 있었던 것도 역사서를 즐겨 읽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국가 지도자들의 애독서 가운데는 역사 분야가 상대적으로 많다.

중국 개혁개방의 선도자 덩샤오핑은 마오쩌둥과 비슷하게 중국 역사책과 고전문학을 탐독했지만, ‘사조영웅전’을 비롯한 작가 진융(金庸)의 소설을 각별히 좋아했다. 그는 진융과 만난 자리에서 “내가 당신 책을 읽었으니 우리는 친구”라 말하며 자신이 열광적인 팬임을 밝혔다. 덩샤오핑은 지도책도 무척이나 즐겨 보았다. 출장 갈 때도 중국 지도와 세계 전도를 챙겨 수시로 펼쳐 봤다. 국가 지도자에게 필요한 지정학(地政學)적 식견과 감각을 갈고닦았는지도 모른다.

일본 아베 신조 총리의 애독서는 작가 후루카와 가오루(古川薰)의 ‘유혼록(留魂錄)의 세계’라 한다. ‘유혼록’은 메이지 유신의 정신적 지도자로 일컬어지는 요시다 쇼인(吉田松陰)이 남긴 유언서라고 할 수 있는 문헌으로, 앞부분에 이런 문장이 나온다. “이내 몸은 비록 죽더라도 일본 민족의 고유한 정신(大和魂)만은 반드시 세상에 남길 것이다.” 아베 총리가 “강한 일본을 되찾자”며 우경화와 군사대국화 방향을 취해온 것을 떠올리게 한다.

시급하고 중요한 국정 현안을 다뤄야 하는 국가 지도자들은 차분하게 책 읽을 시간이 부족할 것이다. 그럼에도 책을 가까이 해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국정은 기술보다 지혜의 차원에서 접근해야 하기 때문이다. 미래를 내다보며 현재를 통찰하는 지혜를 책에서도 얻는 지도자가 그립다.
 
표정훈 출판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