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설계자들/김건우 지음/296쪽·1만7000원/느티나무책방
일제에 의해 학도병으로 강제 징집됐으나 탈출해서 광복군에 합류한 장준하(오른쪽)와 김준엽(가운데). 느티나무책방 제공
해방 이후 우파(右派) 지성사의 흐름을 정리한 이 책도 친일 부역문제에서 논의를 시작한다. 일본 제국주의에 맞선 동시에 공산주의를 배격한 진짜 우파들이 대한민국 발전을 이끌었다는 주장이다. 흔히 ‘우파=친일, 좌파=항일’이라는 이분법적 편견은 그릇된 것임을 보여준다.
저자가 양심적 우파로 특히 주목한 건 일제강점기 전장으로 끌려간 학도병(學徒兵) 출신 인텔리들이다. 제국대학이나 전문학교에서 교육받은 이들은 해방 이후 건국 과정에 필요한 기술과 학식을 갖췄다. 그런데 이보다 더 중요한 건 이들의 출생 시기다. 1920년 전후에 태어나 일본 고등교육의 세례를 받았지만, 친일 기득권 세력에 포섭되기엔 나이가 어렸다. 해방 직후 ‘친일 콤플렉스’에 시달렸던 선배 지식인들과 결정적으로 차별화된 지점이다.
이들의 민족주의 항일 인식은 평생 소신이었다. 학계로 진출해 고려대 총장을 지낸 김준엽은 1987년 헌법 개정 당시 ‘대한민국 임시정부 법통을 계승한다’는 조항을 넣는 데 크게 기여했다. 김준엽과 장준하가 군사독재 정권에 맞서면서 박정희의 일본군 복무를 비판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저자는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기까지 ‘산업화 vs 민주화’ 세력의 각축으로 보는 이분법적 접근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한다. 군사독재에 반대한 양심적 우파 지식인들이 박정희 집권 전 이미 경제개발계획을 입안하는 등 산업화와 민주화의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데 크게 공헌했다는 것이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