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초저금리에도 주택대출 엄격 관리, 가계 빚 줄였는데 한국거꾸로정책으로 가계 빚폭탄 안겨 지나치게 완화됐던 대출 건전성 규제… 조속히 정상화해야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
2014년 8월, 당시 최경환 경제팀은 금리 인하를 압박하면서 동시에 주택담보인정비율(LTV), 총부채상환비율(DTI) 등 주택담보대출에 대한 건전성 규제를 대폭 완화했다. 싼 금리로 대출을 많이 해줄 테니 집을 사라는 명백한 신호였다. 선진국들은 제로금리인데 한은은 뭐 하냐는 소리도 빗발쳤다.
그런데 여기서 주의 깊게 봐야 할 부분이 있다. 미국은 2014년 초에 주요 도시 집값이 전 고점보다 20% 낮은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DTI가 43%를 넘지 않도록 주택담보대출 규제를 강화했다. 웰스파고 같은 은행들은 DTI를 36% 이내로 유지하는 자율규제도 실시했다. 즉, 미국은 초저금리 속에서도 주택대출이 급증하지 않도록 원리금 상환액이 월소득의 30∼40% 수준을 넘지 않게 엄격히 관리했던 것이다. 한국이 금리를 낮추면서 동시에 DTI 한도를 수도권 60%, 기타 지역 적용 면제로 크게 완화했던 것과는 극명한 대비를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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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미국은 저금리 정책을 쓰면서도 주택대출 규제를 강화해서 가계의 금융건전성을 개선시킨 반면, 한국은 금리를 사상 최저로 낮추면서 주택대출 규제를 완화하는 무모한 길을 갔다. 그 결과가 바로 가계부채 폭탄이다.
거시적으로 볼 때 위험하기 짝이 없는 이런 정책 조합이 실행됐던 것은 LTV나 DTI 같은 금융건전성 규제 수단을 부동산 경기 조절 수단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가계대출에 대한 건전성 규제는 부동산 경기가 여름이냐 겨울이냐가 아니라 가계 빚이 가계소득으로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냐를 기준으로 실행하는 것이 기본이다. 빚이 소득보다 빠르게 한 방향으로 늘어만 갈 때에는 건전성 규제를 강화하는 것이 순리인데도 부동산 경기만 바라보다가 결국 경제성장도 금융건전성도 모두 놓치고, 국민들만 부채폭탄의 인질로 만들어 놓은 셈이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조지프 스티글리츠는 아무리 금리를 낮추고 돈을 풀어도 그것이 자산시장으로 흘러들어 가서 부동산 가격을 높이는 데 쓰이게 되면 통화정책이 경제를 살리지 못하고 오히려 자원 배분만 왜곡한다고 지적했다. 부동산이 스펀지처럼 통화정책 효과를 모두 빨아들이는 것이다.
그러므로 금리를 낮추고 돈을 풀 때에는 그 돈이 부동산 거품을 만들지 않도록 부동산 대출 규제로 방어막을 쳐서 돈이 생산적인 곳으로 흘러가게끔 유도하는 것이 옳다. 부동산을 고사시키자는 것이 아니다.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생산 활동이 늘고 가계의 근로소득이 견실하게 증가하면 건전성 규제 속에서도 자연스레 대출이 늘고 부동산 경기도 좋아지지 않겠는가. 투기 수요에 기댄 반짝 건설경기보다는 건전하고 지속가능한 성장을 추구하자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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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