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병원 ‘왓슨’ 암 진료현장 가보니
17일 인천 남동구 가천대 길병원 인공지능 암센터에서 유방클리닉 등 각 분야 전문의 6명이 의료용 인공지능 ‘왓슨 포 온콜로지’를 활용해 40대 유방암 환자를 진료하고 있다. 왓슨은 환자의 진료 정보를 학습한 1500만 쪽 분량의 연구 자료와 대조한 뒤 추천 항암제와 호르몬요법 등을 화면에 나타냈다. 길병원 제공
7초 후 왓슨이 추천하는 호르몬요법, 항암제 16건의 목록과 기대 생존율, 우선순위가 화면에 나타났다. A 씨는 왓슨이 추천한 항암제 ‘사이클로포스파마이드’와 여성호르몬 억제제 ‘타목시펜’의 투약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하되 안희경 혈액종양내과 교수의 보충의견에 따라 먼저 유전자 검사를 받은 뒤 최종 결정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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왓슨의 추천이 인간 의사와 엇갈릴 때도 있다. 왓슨은 의사가 확인하지 못한 해외 연구 결과를 참고할 수 있고, 의사는 환자의 운동 능력, 경제력, 건강보험 적용 여부 등 AI가 고민하지 않는 변수를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수술한 대장암 2기 환자 B 씨(85)는 인간 의사를 택했다. 왓슨은 환자가 고령인 점을 감안해 효과가 다소 떨어지지만 부작용이 적은 항암제를 추천했다. 하지만 의료진은 B 씨가 평소 건강관리를 잘했고 수술 예후가 좋은 점을 고려해 더 강력한 항암요법인 ‘폴폭스’를 권했다. B 씨는 폴폭스를 택했고, 현재 부작용 없이 치료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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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병원 측은 “환자 대다수가 왓슨의 조언을 ‘최종적인 진단’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고 귀띔했다. 기존 진료 결과를 신뢰하지 못하고 병원을 전전하던 환자도 왓슨의 의견이 인간 의사의 것과 같다는 점을 확인하면 치료에 적극적으로 응하기 시작한다는 뜻이다. 길병원이 집계한 왓슨 이용 환자들의 평균 만족도는 10점 만점에 9.5점이었고, “왓슨을 이용한 뒤 진료 결과에 대한 신뢰가 유지되거나 더 강해졌다”는 응답 비율은 100%였다.
왓슨 도입 후 달라진 점 중 하나는 환자를 대하는 의료진의 긴장도가 높아졌다는 것. 길병원은 의료진이 왓슨과 다른 치료법을 추천할 땐 분명한 근거를 제시하도록 했다. 한 의사는 “기존엔 경력이 적은 주니어 의사가 시니어 의사의 권위에 압도되는 경우가 있었지만 왓슨 앞에선 과학적 근거에 입각한 난상토론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1월엔 부산대병원이, 이달 16일엔 건양대병원이 길병원에 이어 왓슨을 도입했다. 현재 왓슨은 결장·직장, 유방, 폐, 위, 자궁암만을 진단할 수 있지만 4월엔 난소암이 추가되고 연말엔 방광, 전립샘, 혈액암(백혈병)까지 추가돼 암종 85%를 커버할 수 있게 된다.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