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에서는 모두 불법입니다/최은주 지음/308쪽·1만5000원·갈라파고스
최은주 씨
2005년 프랑스에서 석사를 마치고 박사과정을 준비하던 저자는 파리에 있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한국 대표부의 어시스턴트 채용 공고를 보고 지원해 일하게 된다. 이후 7년 동안 대표부에서 ‘행정원’으로 일했던 저자가 본 대한민국 외교부 해외 공관의 민낯이 책에 그대로 드러난다.
대표부 관료들은 개인적인 식사를 하고 마치 OECD 본부 국장이나 과장급 인사를 만난 것처럼 꾸며 영수증을 총무과로 넘겨버렸다. “직위가 높을수록 이런 사례가 많았는데, 제 가족이나 친구들과 외식을 하고 공적인 일로 점심을 먹은 것처럼 위장술을 썼다. … 보는 내가 다 민망했는데 정작 당사자들은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자신들은 특수한 계층이기 때문에 그런 남용도 권리라고 떳떳하게 믿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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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파리의 OECD한국대표부 공관. 부자 동네인 16구에서도 수려함으로 손꼽히는 대저택으로 프랑스 대기업 회장 소유였던 것을 한국 정부가 샀다고 한다. 갈라파고스 제공
그래도 외교관들이니 외국어에는 능통하지 않을까. “아주 가끔, 3년 가뭄에 콩 하나 나듯 프랑스어를 하는 외교관이 부임하기도 하는데, … 간단한 의사소통만 가능할 뿐 복잡한 법적·행정적 업무를 실행하기에는 역부족이다.”
그래서 재외공관의 행정업무는 현지 채용된 프랑스 직원이나 저자처럼 프랑스어를 자연스럽게 구사하는 한국계 직원들이 맡는다. 모두 비정규직인 이들은 ‘직원’이 아니라 ‘행정원’이라고 불린다. “행정원 주제에” “가서 행정원 하나 데려와!” “그까짓 행정원 따위가”라고….
이런 분위기에서 저자는 2011년 한 상관으로부터 폭언과 밀침 등을 당한다. 대표부는 저자가 외교부 장관에게 편지를 써서 알린 뒤에야 이 직원에게 형식적인 징계를 내린다. 저자가 소송을 준비하자 대표부는 저자를 해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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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에서 감정을 좀 덜어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화낼 만한 사람에게 화내지 말 것을 기대하는 것 또한 온당치는 않겠다. 한국 국적의 저자를 지켜준 건 프랑스 노동법이었다. 한국과 대비되는 프랑스의 노동 문화가 우리의 현실을 새삼 돌아보게 만든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