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와 몸짓/칼 사피나 지음·김병화 옮김/782쪽·3만5000원·돌베개
‘소리와 몸짓’을 읽으면서 미국 생태학자인 저자가 인간 중심의 척도에서 벗어나 동물 관점에서 이들의 행위와 의도를 연구한 접근 방식이 흥미로웠다. 특히 저자가 동물들의 내면세계를 분석한 건 과학과 비(非)과학의 경계에 있는, 어찌 보면 대단히 용감한 시도인지도 모른다. 사실 ‘동물도 의식을 갖고 있는가’란 의문에 대한 탐구는 실증주의와 행태주의에 젖어 있는 과학자들에게 한동안 외면당한 주제였다. 말도 안 통하는 동물의 내면을 어떻게 알 수 있느냐는 이유였다.
그래서 금기된 질문을 던지는 소수자들에게 주류학계는 ‘비과학’이라는 무시무시한 낙인을 찍고 탄압했다. 실제로 저명 동물학자 도널드 그리핀은 1970년대 “동물도 의식을 갖고 있다”는 주장을 펴 학계에서 ‘왕따’가 됐다. 유명 학술지 ‘사이언스’에는 “동물 지각 연구는 종신교수 직에 있지 않은 학자에게 권하고 싶지 않다”는 글이 실리기도 했다.
예컨대 코끼리의 정서는 무리를 이끄는 나이 많은 암컷 가모장(家母長) 코끼리의 성향에 크게 좌우된다. 풀이 풍부한 서식지를 찾아내고 적을 피하는 임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가모장 코끼리가 불안에 시달리면 나머지 코끼리들의 스트레스 호르몬(코르티솔) 수치가 높아진다. 발정기의 수컷 코끼리가 무리에 훼방을 놓을 때 이보다 훨씬 왜소한 가모장 코끼리가 몸으로 밀어내는 용기를 발휘하는 것도 리더로서 헌신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저자는 말한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