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김재호 과학평론가
알고 보니 연구실 아래층에 있던 곰팡이가 플레밍의 연구실로 우연히 날아온 것이었다. 이 곰팡이는 항생제 페니실린의 시초가 된다. 그런데 페니실린이 상용화할 즈음인 1940년대에 포도상구균이 항생제에 저항성을 띠기 시작한다. 마치 항생제의 쌍둥이 같은 버그가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지난달 27일, 세계보건기구(WHO)가 인류를 위협하는 슈퍼버그 12종을 발표했다. 12종에는 임질이나 식중독을 일으키는 박테리아부터 감염자의 50% 이상이 사망하는 ‘카바페넴 내성 장내세균’ 등이 포함됐다. 슈퍼버그는 항생제의 남용으로 생겨난 돌연변이 박테리아다. WHO는 항생제 개발이 시급한 최우선 병원균 목록을 제시한 것이다.
항생제는 생명을 구한다. 하지만 그만큼 부작용도 있다. 미국에서만 매해 200만 명 이상이 슈퍼버그에 감염되고 그중 2만3000명이 사망한다. 에이즈로 인한 사망자보다 많은 숫자다. 보건복지부 발표에 따르면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항생제 사용량에서 이탈리아와 공동으로 1위를 차지했다. 2015년 기준, 항생제를 처방받는 사람 수가 하루 1000명당 31.5명이었다. 그중 0∼6세 영유아가 47.9%로 처방을 가장 많이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심각하다.
박테리아는 원핵생물, 세균이다. 박테리아는 단 하나의 세포로 이뤄져 있으며 단순하다. 그런데 그 숫자는 지구상의 모든 생물을 합한 것보다 더 많다. 대부분의 박테리아는 무해하지만 일부 박테리아는 치명적인 질병을 불러일으킨다. 우리 몸에 자연적으로 생기는 항생 물질도 있지만 그러지 못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인간은 항생제를 이용한다. 항생제를 많이 사용하면 할수록 그 효과는 떨어진다.
문제는 박테리아의 돌연변이다. 박테리아가 돌연변이에 성공해 생존할 확률은 1억분의 1 혹은 10억분의 1 정도이다. 허나 박테리아의 숫자가 조 단위이기에 확률은 훨씬 높아진다. 돌연변이 중에서 극히 일부는 저항력 있는 슈퍼박테리아 계통을 만들어낸다. 예를 들면 피부염, 폐렴, 패혈증을 발생시키는 박테리아들이다.
박테리아는 세포 내부에 있는 항생제를 밖으로 펌프질해 방출하거나, 항생제를 화학적으로 비활성화하거나, 항생제의 목표물을 변이시킨다. 일부 황색포도상구균 계통은 페니실린, 메치실린, 옥사실린 같은 베타락탐 항생물질에 저항하는 MRSA(Methicillin Resistant Staphylococcus Aureus)로 진화했다. MRSA는 거의 모든 항생제에 강한 내성을 지닌 악성 세균이다. 심지어 식중독을 일으키는 살모넬라균은 항생제를 공격한다.
항생제에 저항하는 박테리아가 생겨나는 것은 마치 컴퓨터 백신과 새로운 바이러스의 생성과 같다. 더 좋은 항생제가 생기면 생길수록 더욱 기괴해지는 돌연변이 박테리아가 슈퍼버그다. 한국은 2010년부터 슈퍼버그를 법정전염병으로 지정해 관리하고 있다. 항생제와 슈퍼버그의 싸움은 영원히 끝날 것 같지 않다.
김재호 과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