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수출입, 기업, 농협 등 특수은행이 지난해 3조5000억 원의 적자를 냈다고 금융감독원이 어제 밝혔다. 대우조선해양 지원에 발목이 잡힌 산업은행, 성동조선해양 부실로 손실이 커진 수출입은행 등 양대 국책은행이 구조조정 과정에서 낸 손실이 대부분이다. 국책은행이 손해를 볼 정도로 조선·해운업에 대규모 혈세가 투입됐지만 아직도 기업 부실을 털어내지 못했으니 답답한 노릇이다.
시중은행 아닌 국책은행이 구조조정의 총대를 메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피하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대기업에 지원된 정책자금의 12%가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못 갚는 좀비기업에 흘러들어 갔다. 정부와 국책은행이 말로는 구조조정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도 실제론 제힘으로 살아남지 못할 기업에 정책자금을 퍼줘 연명시켰다는 얘기다. 감독 책임이 있는 정부는 ‘채권단 중심의 구조조정’이 필요해서라고 주장하고, 홍기택 전 산업은행 회장 같은 사람은 ‘정부의 들러리를 섰을 뿐’이라고 서로 책임을 떠넘기지만 이렇게 된 원인은 간단하다. 정부도, 국책은행도 구조조정을 하기 싫기 때문이다.
정권과 정치권, 국책은행, 자회사가 정경유착으로 얽힌 풍토에선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할 이유가 없다. 정권은 국책은행장에 정권 창출에 공이 있는 인사를 낙하산으로 내려보내고, 국책은행은 퇴직 임원을 자회사로 이동시키고, 정치인들은 이 과정에서 각종 이권을 챙기니 ‘누이 좋고 매부 좋고’다. 자회사를 매각하고 부실을 정리하는 힘든 일에는 누구도 나서지 않고 폭탄 돌리기만 계속해 혈세 내는 국민만 등골이 빠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