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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개월뒤 정규직’ 헌신짝… 1년 넘게 인턴중

입력 | 2017-03-03 03:00:00

‘채용연계형 인턴’ 울리는 기업들




“정규직 되고 싶어? 그럼 인턴 6개월만 더 해!”

지난해 6월 말 한 여행사 인턴이었던 A 씨(26)가 회사로부터 받은 통보다. 그는 같은 해 1월 이 여행사 신사업기획 부서에 6개월짜리 채용연계형 인턴으로 뽑혔다. 하지만 기간 종료 후 정직원이 되지 못했다. 물론 채용연계형 인턴 모두가 정식 채용되는 건 아니다. 다만 A 씨는 중간평가에서 동기 중 1등을 했기에 내심 기대가 컸다. 실망한 그에게 회사 관계자는 인턴생활 6개월 연장을 제안한 것이다.

집안 사정이 어려운 A 씨는 12월까지 인턴 기간을 연장했다. 야근과 주말 출근을 밥 먹듯 했지만 추가 수당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정식 채용의 꿈을 위해 견뎠다. 약속한 6개월이 얼마 남지 않자 갑자기 회사 분위기가 바뀌었다. 팀장들은 돌아가며 그에게 업무를 맡겼고 A 씨가 실수라도 하면 폭언이 쏟아졌다. “알아서 나가라는 의미였다.” A 씨가 정규직 꿈을 접고 회사를 나온 이유다.

광고·홍보대행사 인턴 B 씨(26)는 1년째 채용연계형 인턴으로 일하고 있다. 원래는 지난해 1월부터 6월까지 일한 뒤 정규직 전환 여부가 결정돼야 한다. 회사는 “자리가 나는 대로 정식 채용하겠다”며 인턴 기간 연장을 제안했다.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라는 단서도 붙였다. B 씨는 약속을 굳게 믿고 지금까지 정규직 사원과 똑같은 업무를 계속하고 있다. 월급 120만 원 외에 추가 수당은 없다.

정규직 채용과 연계하겠다며 인턴을 뽑은 뒤 이를 조건 삼아 인턴 기간을 계속 늘리는 기업들이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다. 정규직 전환 시기가 되면 “아직 자리가 안 났다”며 인턴 기간을 슬쩍 연장한 뒤 추가 근무를 시키고 수당을 제대로 주지 않는 등 주먹구구식으로 운영하는 것이다.

채용연계형 인턴들은 수련생과 근로자 신분 사이에 끼여 관리·감독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이들은 법적 지위가 따로 없다. 대부분 훈련을 목적으로 하는 ‘일경험 수련생’으로 분류된다. 정부의 ‘일경험 수련생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근무 기간은 최대 6개월, 하루 8시간(주간 40시간)까지만 가능하다. 교육 담당자 배치와 훈련일지 작성 등도 기업의 의무다. 하지만 실제 이들의 역할은 정규직 사원이 할 일을 대신하는 근로자에 가깝다.

전문가들은 채용 때부터 정규직 전환 시기, 인원 등을 정확히 밝히지 않는 ‘깜깜이’ 채용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2일 대통령직속 청년위원회가 인턴 채용 공고 267건(2015년 7월 1일∼8월 31일)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채용 연계’를 명시한 86곳 가운데 인원 공개는 6곳에 불과했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임금 추후 협의, 채용 인원 ○○명 등 추상적 표현 말고 명확한 내용을 공고하도록 규제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정부의 안일한 인식도 문제다. 고용노동부는 “처음부터 기간제 근로자로 계약한 뒤 최대 2년 이상 근무하면 자동으로 정규직 전환이 돼 인턴도 보호받을 수 있다”는 의견만 내놓고 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기업은 인턴을 기간제 근로자로 채용할 의무가 없기 때문에 이들이 정당한 근로자 처우를 못 받고 있는 것”이라며 “채용을 무기로 저임금 편법 노동을 시키지 못하도록 법제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고야 best@donga.com·백승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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